그냥, 사람
그냥, 사람 | 홍은전 | 봄날의 책 | 2020
사람들은 차별받은 사람과 저항하는 사람을 같은 존재라고 여기거나 차별받았으므로 저항하는 게 당연하다고 쉽게 연결 지었다. 하지만 나는 차별받은 존재가 저항하는 존재가 되는 일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으며 오히려 순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차별받으면 주눅 들고 고통받으면 숨죽여야 한다.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러라고 하는 게 차별인 것이다. 모두가 침묵하고 굴종할 때 차별은 당연한 자연현상이 된다. p.26
나는 그들이 부디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싸우는 사람이 사라졌다는 건 세상의 차별과 고통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세상이 곧 망할 거라는 징조이기 때문이다. p.27
이 사회가 이토록 형편없이 망가진 이유, 그것은 혹시 우리를 버려서가 아닌가. 장애인을 버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버리고, 병든 노인들을 버려서가 아닌가. 그들은 가장 먼저 위험을 감지한 사람들, 이 세상의 브레이크 같은 존재들이다. 속도를 낮추고 상처를 돌보았어야 한다. p.79
사람들은 '알기 떄문에' 떠났다. '안다는 것'과 '감당한다는 것' 사이엔 강이 하나 있는데, 알면 알수록 감당하기 힘든 것이 그 강의 속성인지라, 그 말은 그저 그 사이 어디쯤에서 부단히 헤엄치고 있는 사람만이 겨우 할 수 있는 것이어다. p.102
인구의 10퍼센트가 장애인이지만 그들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비장애인들은 일상적으로 자신들의 가해 사실을 인식할 수조차 없다. p.125
세상의 변화는 '장애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 '장애인에게 닥쳐온 어떤 세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시작되며, 그것은 이 폭력적인 사회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살아가는 90퍼센트의 사람들이 비로소 '비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성찰할 때일 것이다. p.125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위험 속에 산다." 위험하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어떤 위험은 명백히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바깥에 있다. 일어날 위험에 대한 대비와 일어난 사고에 대한 대책을 함께 마련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이유 아닌가. p.158
죽음은 압도적인 경험이지만, 그 일이 닥쳐온다 해서 모두가 그것을 '제대로' 겪는 것은 아니다. 가족을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죽음에 대해 무지한가를 깨닫게 되고, 장례가 끝나면 그 이유를 곧 알게 된다. 죽음은 우리 사회의 가장 강력한 금기인 것이다. 금기된 것은 배울 수 없다. p.181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몸을 사리며 적당히 비겁하게 내 곁에서 오래 살아주길 바란다. 그러므로 나는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고통에 대해 얼마간의 책임이 있고 어떤 의무를 져야 하는 것이다. p.213
어떤 사람은 당연히 받는 선물을 어떤 사람은 평생 싸워서 얻는다.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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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여러 사람이 올해의 책으로 꼽았던 책을 해가 바뀌고 나서 읽었다. 제목인 <그냥, 사람>은 '불쌍한 장애인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라는 말에서 가져왔다. 읽는 내내 발달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친동생의 결혼식에도 참석할 수 없었던 친척 동생이 떠올랐다. 그 친동생은 오빠와 같은 사람을 돕기 위해 특수학교 교사가 되었는데도, 정작 본인의 결혼식에서는 오빠의 존재를 지워야 했다.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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