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문법
가난의 문법 | 소준철 | 푸른숲 | 2020
지금의 일부 노인들은 사회보험 제도가 정착하기 전에 노인이 되어버렸다. p.9
이제는 가난의 문법이 바뀌었다. 도시의 가난이란 설비도 갖춰지지 않은 누추한 주거지나 길 위에서 잠드는 비루한 외양의 사람들로만 비추어지지 않는다. p.28
노인이 꼭 일을 해야 할까? 정부는 일정 이상의 나이가 된 사람들을 '노인'이라 부르며,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은퇴'를 하게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노인'의 '고용률'을 계산한다. 이건 모순된 상황이 아닐까? 게다가 노인들의 가난 문제에 대해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식을 택한다. '은퇴'를 하게 해 놓고, 질 낮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답은 은퇴를 제고하자는 것과 일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사회보장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으로 나뉠 수 있다. p.46
'재활용품 수집 노인'이란 가난의 표상으로 쓰이곤 한다. 노인의 동년배들은 연민을 표하고, 이보다 젊은 세대는 반면교사로 삼고 있는 실패의 전형이다. p.50
"기술적 진보와 기업조직의 변화, (소비자의)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을 사용하는 습관, (불완전한) 도시 당국의 쓰레기 수거 시스템", 그리고 생산자가 생산품의 처리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 상황이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을 존재하게 한다. p.92
몇몇 사람들의 막연한 연민과 감동이 불편한 이유는 이것이 '사회를 위한 사유'가 아니기 때문이라서다. 대개는 연민을 느끼고 동정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김동인 경우가 많다. p.207
우리는 누군가의 가난을 보며 사회 체제의 불안정함과 미비함을 깨닫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깨달음은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는 결론이 아니라 스스로의 상대적 안정감을 확신하고 불안정에 대한 두려움을 상기하는 것으로 이어질 따름이다. p.209
노인의 범위는 청년과 장년과 중년을 합친 범위보다도 훨씬 크다. 그래서 노인을 정의하기란 까다롭다. 신체적 활력을 기준으로 할 때에도 '매우 활동적인 사람'과 '삼하게 노쇠한 사람'이 모두 별다른 구분 없이 '노인'이라는 카테고리에 포함된다. p.211
현재의 '지원' 형태는 노인들을 치사하게 만든다. 시혜적인 서비스 자체는 존속하겠지만, 누군가가 서비스를 받으면 누군가는 떨어져나가게 된다. 번번이 지원에서 밀려나는 일부 노인들은 홀로 두려움과 패배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 p.224
종교시설은 노인과 여러 면에서 관계를 맺고, 이들을 안도케 하는 기능이 있다. 현재 시점에서는 종교 시설에서 쌀과 같이 부족한 필수 자원을 지원받을 수 있고, 미용과 같은 서비스를 제공해 현금 소비를 하지 않게끔 한다. 한 달에 한두 번 문안인사를 하는 자녀들과 달리, 성직자와 임원들과 봉사자들을 지속적으로 만나 축복을 나누며 위로를 받을 수도 있다.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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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원룸 공동주택에 살 때는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노인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났다. 무더운 여름에도,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에도 재활용품을 내놓으면 1시간 안에 사라졌다. 그 노인들을 바라보던 20대의 나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생각하기보다는 먼 훗날의 내가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노인이 되었을 때 내 디그니티를 지키며 살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 같다.
02. 1945년생 윤영자 씨보다 몇 살 더 많은 우리 할머니는 국민연금이 지금처럼 널리 확대되지 않았던 때에 50대를 맞이했지만, 아빠가 그때 국민연금에 가입해 드린 덕에 20년 넘게 혜택을 보고 계시다.
가입할 당시만 해도 이렇게 오랫동안 받을 줄은 할머니도 아빠도 몰랐겠지만 윤영자 씨가 화려했던 시절에 국민연금이라도 가입했다면 아주 조금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