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티처
코리안 티처 | 서수진 | 한겨레출판 | 2020
"선생님 덕분이에요."
'N 덕분'이라는 문법을 배운 모양이었다. 이렇게 잘 익혀서 적절하게 사용하는 학생들을 보면 힘이 났다. p.74
한국인의 대다수가 틀린 표현을 쓴다고 해서 미주까지 틀린 표현을 가르칠 수는 없다. 실제로 미주는 '거에요'가 아니라 '거예요'라는 것을, '을께요'가 아니라 '을게요'라는 것을 강조했다. "한국 사람들은 '거에요', '거예요' 뭐가 맞아요, 몰라요. 하지만 여러분은 알아요. 여러분이 한국어를 더 잘해요"라는 식의 농담을 하고는 했다. p.113
언어 수준이 낮아지면 그만큼 너그러워지고 순수해지는 부분이 있어서 가은도 학생들도 별거 아닌 것으로 자주 웃었다. p.169
한국어에는 왜 이유 문법이 많을까? 가은도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유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고 가은은 생각했다. 왜? 도대체 왜? 왜 그렇게 된 거야? 이유가 뭐야? 이유가 있을 거 아냐? 결과가 있으니 원인이 있는 게 당연하잖아?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다 보니 이렇게나 많은 이유 표현이 생겨난 거 아닐까. p.173
한희가 결혼을 했다고 하면 "결혼했으니까 한국어 강사를 하지"라고 말했다. 시수를 단축할 때도 기혼 강사들에게는 크게 미안해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남편이 버는데, 뭐."
"아기를 키우려면 짧게 일하는 게 더 좋잖아?"
이런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생활비는 남편이 벌고 아내는 대학에서 일한다는 그럴듯한 명함을 위해 잠깐 나오는 것. 가사와 양육이 주이고, 한국어 강사 일은 서브로 하는 것. 그러나 한희는 단 한 번도 이 일을 서브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p.205~206
"결혼했는데 왜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해?"
여자가 열심히 일하는 것은 돈을 잘 못 버는 못난 남편을 두었다는 증거라는 듯이. 남편이 돈을 잘 번다면 여자는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p.206
나는 내일 떠난다.
한국어 문법은 때로 예정된 미래, 혹은 확실한 미래를 현재형으로 표현한다. 너무나 확실하기에 현재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처럼 선명한 미래라고 해도, 절대로 바뀔 리 없는 예정이라고 해도, 이 역시 부서져버릴 수 있다.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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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고학력 비정규직 여성들의 일하는 이야기'라니, 내 이야기인가? 요즘은 석사가 하도 많아서 고학력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02. 의외로 읽는 내내 중국에 어학연수 갔던 시절 생각이 많이 났다. 그때 그 어학당 선생님들은 잘 계실까, 친구들은 잘 있을까(한국 친구들 몇 명은 지금도 연락 중), 다른 친구들도 나처럼 중국어로 밥벌이하며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