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세계
어린이라는 세계 | 김소영 | 사계절 | 2020
확실한 건 어린이에 대해 생각할수록 우리 세계가 넓어진다는 것이다. p.8
세상의 어떤 부분은 시간의 흐름만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나는 어린이에게 느긋한 어른이 되는 것이 넓게 보아 세상을 좋게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를 기다려 주는 순간에는 작은 보람이나 기쁨도 있다. 그것도 성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린이와 어른은 함께 자랄 수 있다. p.20
착하다는 게 대체 뭘까? 사전에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고 설명되어 있지만, 실제로도 그런 뜻으로 쓰이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보다는 어른들의 말과 뜻을 거스르지 않는 어린이에게 착하다고 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러니 어린이에게 착하다고 하는 건 너무 위계적인 표현 아닌가. p.32
한 사람으로서 어린이도 체면이 있고 그것을 손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린이도 남에게 보이는 모습을 신경 쓰고, 때와 장소에 맞는 행동 양식을 고민하며,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p.42
나는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 주는 품위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어린이 앞에서만 그러면 연기가 들통나기 쉬우니까 평소에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감사를 자주 표현하고, 사려 깊은 말을 하고, 사회 예절을 지키는 사람. 세상이 혼란하고 떠들썩한 때일수록 더 많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p.45~46
어떤 어린이는 여전히 TV로 세상을 배운다. 주로 외로운 어린이들이 그럴 것이다. 어린이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가장 외로운 어린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p.102
어린이에게 자매, 형제는 부모라는 절대적인 조건을, 지붕을 공유하는 동지다. 인생의 초기 단계에서 만나 평생을 알고 지내는 친구이기도 하다. 각자 서투른 채로, 서로의 사회화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도 바로 자매, 형제다. 그러니 다투기도 화해하기도 일생일대의 과제가 되는 것 아닐까. p.108~109
새로운 속담 만들기를 할 때는 "읽지도 않을 책은 사지도 마라 ㅡ 낭비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썼다. 내게 한 말은 아니지만 나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p.144
어린이에게 존댓말을 써 보면 자기 목소리가 얼마나 어른스럽게 들리는지 알게 된다. 의외로 반말을 쓸 때보다 대화의 분위기도 훨씬 부드러워진다. p.193
어린이가 어른의 반만 하다고 해서 어른의 반만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 명이다. 하지만 어떤 어른은 그 사실을 깜빡하는 것 같다. p.197
"왜 안 낳아?"라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나는 "왜 낳았어?"라고 묻지 않는데. "안 낳으면 나중에 후회해"라는 말도 들어봤다. 나는 "낳은 거 나중에 후회할걸"이라고 하지 않는다. 차마 그런 식으로 대꾸할 수는 없어서 속상한 순간이 많았다. p.217
사회가 여성에게 "아이를 낳아라" 하고 말하면 안 되는 것처럼, 우리도 "아이를 낳지 말자"라고 받아치면 안 된다. 사회가 아이를 가질 자격이 없으니 주지 않겠다고, 벌주듯이 말하면 안 된다. 이 말은 곧 사회가 자격이 있으면 상으로 아이를 줄 수도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p.218
언제나 절망이 더 쉽다. 절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고, 무엇을 맡겨도 기꺼이 받아 준다. 희망은 그 반대다. 갖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 요구하는 것이 많다. 바라는 게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외면하면 안 된다고, 심지어 절망할 각오도 해야 한다고 우리를 혼낸다. 희망은 늘 절망보다 가차 없다. 그래서 우리를 걷게 한다. p.219~220
어린 시절은 어린이 자신보다 어른에 의해 만들어지는 부분이 많은 구간이다.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치지만 수정할 수도, 지어낼 수도, 마음대로 잊을 수도 없다. 어린 시절의 어떤 부분은 어른이 되고서도 한참 뒤에야 그 의미를 알게 된다. 시차는 추억을 더 애틋하게 만들고 상처를 더 치명적인 것으로 만든다.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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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년 연말에 <올해의 책>으로 뽑은 분들을 봐서 리스트에 올려 두었던 책. 김소영 작가님이 등장하는 팟캐스트를 여러 편 듣고 나서 봤더니 대화 내용 중에 등장했던 에피소드가 많아서 재미가 조금 반감됐다. 이토록 생생하게 기억날 줄 알았으면 책부터 읽고 듣는 건데!!
그래도 팟캐 덕분에 김소영 작가님 목소리가 자동으로 음성지원되는 건 좋았다.
2. 읽으면서 어린 시절이 많이 떠올랐다. 내가 어린이었을 때,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였던 엄마, 아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