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야기 32
#아무튼, 8월
코로나19로 시작해 장장 50일이 넘는 장마(라 쓰고 기후위기라 읽는)까지, 여러모로 잊지 못할 2020년. 나에게 상반기 최대 이벤트는 결혼이었는데, 그게 벌써 두 달 전의 일이 되었다. 양가 모두 개혼인지라 스몰웨딩이나 하우스웨딩은 고려하지 않았고, 설령 부모님이 동의하신다 해도 막상 내가 싫었을 것 같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챙겨야 할 텐데, 생각만 해도 귀차나... 그냥 노멀하게 빨리 하고 끝낼래.
5월부터 드라마 번역을 받지 않았기에 일이 반으로 줄어 일정에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최대한 평범하게 준비하는 결혼식인데도 신경 쓸 곳이 많아서 5~6월엔 책 한 권 읽지 못했다. 봐도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리하야 5개월 만에 쓰는 일상 포스팅. 사진이 너무 많이 추리고 또 추렸는데도 많다.
#청첩장 고르기
블로그 업뎃을 얼마나 안 했는지, 청첩장 고른 건 정말 까마득한 옛날 같은데 그래도 기록용으로 남겨 본다.
구 남친, 현 동거인과의 추억이 많이 남아 있는 판교 한스에서 고른 우리의 청첩장. 샘플 여러 개 쭉 늘어놓고 토너먼트식으로 추려서 골랐다. 둘 다 글 쓰는 일과 관련된 직업을 가졌으니 원고지 이미지가 들어간 게 좋겠다는 동거인의 의견을 반영하여 맨 오른쪽 카드로 결정! 아무도 안 볼 것 같은 맨 뒷면에 있는 문구가 '행복하게 잘 살게요'라서 '願得一心人,白頭不相離'로 바꾸었는데(오그리토그리ㅎㅎ) 신기하게도 중국어 모르는 친구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중국어 아는 친구들은 귀신같이 알아보더라.
아는 언니가 청첩장에서 예전의 내 홈피 느낌이 난다고 해서 그게 무엇이냐고 했더니 깔끔한데 귀염귀염하고, 심플한데 달달한 거라고. 좋게 봐 주셔서 감사^^
#청첩장 모임
청첩장 모임으로 바빴던 5월. 한 달 전엔 정신없이 바쁘니까 두 달 전부터 돌리라는 조언을 들었지만, 4월엔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만나기 조심스럽기도 하고 청첩장 자체를 늦게 찍어서 5월에 바짝 돌렸다. 청첩장 찍고 나니까 갑자기 이태원 확진자 폭증... 이때는 정말 하루하루 코로나19 기사 찾아보고, 확진자 수 확인하는 게 일상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사진은 양재 로마옥. 여기서 청첩장 모임을 두 번이나 했다. 5명 예약하니까 룸 자리로 안내해 주어 오붓하게 먹을 수 있는 게 장점. 특히 대학원 동기들과는 사회적 거리두기 철저히 지키느라 거의 몇 달 만에 본 터라 더 반가운 시간이었다. 제일 인기가 좋았던 건 매생이 리조또, 호불호가 갈렸던 건 프로슈토 레몬 파스타.
#병아리
아빠가 병아리 부화기 빌려다가 부화시킨 병아리. 총 일곱 마리가 태어났는데 한 놈은 몇 시간이나 껍데기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버둥거리더니 결국 다리를 못쓰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쩍벌이 교정 방법을 찾아 시도해 보았지만 결국 실패했다. 다리만 못쓰는 게 아니라 다른 곳도 안 좋았는지 제대로 먹지도 않다가 사흘째 되던 날 결국 저세상으로ㅠㅠ
#어쩌다 보니 결혼
정신을 차려 보니 기혼자가 되어 있는데(혼인 신고는 안 했으니 아직 사실혼 관계?), 어쩌다 여기까지 온 것일까.
중국에 '마음먹고 심은 꽃은 피지 않고, 무심코 꽂은 버들가지는 녹음이 무성해졌다(有心栽花花不開,無心插柳柳成蔭)'는 말이 있는데, 우리 사이도 꼭 그런 것 같다. 비혼주의자끼리 만나 결혼을 결심하고 정신을 차려 보니 한 집에 살게 되었다.
코로나19 때문에 결혼식 초대하기가 너무나 조심스러웠지만, '올 사람 다 온다'는 말처럼 정말 올 사람은 다 오더이다... 확진자 늘어나면서 거리두기 강도 높이던 때라 걱정했는데, 청첩장 준 친구 중에 두 명 빼고 다 왔다. 못 온 친구도 한 명은 대전에서 육아 중이고, 다른 한 명은 군부대에서 일해서 못 오리라 예상하긴 했다. 그래도 멀리서 서울까지 찾아와 얼굴 보고 축의금까지 주고 갔다는ㅠㅠ 청첩장 안 줬는데 찾아와 준 친구들도 있고, 소유붕 팬으로 만나 이제는 같은 직군에 일하는 동료로 어언 20년 우정을 이어가고 있는 언니도 멀리 군산에서부터 와 주었다. 결혼식으로 인간 관계 정리된다는데 늦게 결혼하니 정리할 사람은 이미 다 정리가 되었나 봄^^
사회도 비혼 여성, 주례도 비혼 여성이 맡은 결혼식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주례를 부탁드리려고 했던 분은 공직자라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힘들어졌고, 사회만 비혼 여성이 맡았다. 사회는 처음이라고 했지만 워낙 통역을 많이 하는 언니라 믿고 맡겼고, 역시나 목소리 또랑또랑하고 딕션 좋아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벌써 받은 부케 캔들. 부케도 대학원 동기가 받아 주었다. 중국에서 오래 산 친구라 부케 돌려주는 문화(?)를 모를 줄 알았는데, 이렇게 캔들이랑 방향제까지 만들어서 돌려주어서 두 배로 감동. 부케 돌려받는 자리에 있던 다른 친구들은 역시나 이런 문화가 있는 줄도 몰랐다고ㅋㅋ
#신혼여행
내가 신혼여행을 부산으로 가게 될 줄 누가 알았겠냐고... 제주도와 부산을 놓고 고민하다가 부산으로 갔다.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보다는 호캉스하며 푹 쉬겠다는 마음으로 간 여행이지만, 생각보다 더 호텔에만 있었다. 3박 4일 동안 부산 돌아다니며 쓴 돈보다 룸차지가 더 많이 나왔으니 말 다했지.
부산 도착해서 첫 끼니로 먹은 초량밀면. 둘 다 밀면을 안 먹어 봐서 도전했지만, 우리한텐 딱히 기억에 남는 맛은 아니었다. 그래도 맛집이긴 맛집인지 점심 시간이 꽤 지나서 갔는데도 북적북적.
물회 먹고 싶어서 검색해 보고 간 스시미르네. 우리 정말 결혼한 거 맞나, 실감이 안 난다 하는 뻔한 얘기를 나누며 물회에 소주잔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튿날 조식. 코로나19 때문에 뷔페식으로 운영하지 않고 주문하면 갖다 준다. 접시 들고 돌아다니기 귀찮아하고, 뷔페는 왠지 늘 손해 보는 느낌인 나는 이 방식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이것저것 시켜서 다양하게 먹어 봄.
조식 먹고 근처 동백공원 산책. 걸어가기엔 애매한 거리라 택시 타고 갔다. 날씨가 다 했지 뭐.
점심 먹으러 서면으로ㄱㄱ 인스타에서만 봤던 라라관을 드디어 가 보게 되었다. 평일 점심이라 그런지 손님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사진에 안 보이는 곳에 두 테이블 정도 있었던 듯.
동거인이 마라 초심자라 이런 걸 먹여도 될까 싶었지만, 궈바로우가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다독이고(실은 강하게 키우겠다는 생각으로) 주문! 매워서 헉헉대긴 했지만 그래도 야무지게 먹었다. 조금만 더 단련하면 나중에 쓰촨 갈 때 데려가도 될 것 같은데, 쓰촨 가는 날이 언제 올지... 망할 코로나19.
라라관에서 훠궈 먹었으면 바로 옆 차차탱 가는 게 코스 아닌가요ㅋㅋ 너무 배가 불러서 에그타르트는 하나만 시키고 그나마도 동거인 혼자 다 먹었다. 조만간 라라관마트에서 배송해 먹어 봐야지 했는데, 아쉽게도 베이커리 메뉴를 접으신다는 비보를 접하게 되었다. 차차탱도 영업 종료라고, 흐익.
최근에 여기서 마파두부 밀키트를 택배로 주문해 먹어 보았는데, 두부가 세상 맛있는 것. 고추기름도 몹시 만족하며 활용 중이다.
라라관에서 점심 먹고 롯백 돌아다니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한번 들어오니 다시는 나가고 싶지 않아져서 결국 저녁은 룸서비스로.
셋째 날 조식엔 웨이팅이 좀 있었다. 기다린 대신 광안대교를 보며 나란히 앉아 식사할 수 있는 2인석 자리를 겟-
조식 두 번 먹었더니 모든 메뉴를 얼추 한 번씩은 다 먹어 본 것 같다. 그냥 무난무난한 맛.
점심 먹고 다시 객실 가서 누워 있다가 1시 반쯤 간신히 몸을 일으켜(ㅋㅋ) 호텔 근처 윤식당 차돌박이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러고는 호텔로 돌아와 마사지 받았더니 한 일도 없이 또 하루가 거의 다 갔다. 그래도 부산까지 왔는데 프랜차이즈나 가면서 이렇게 안 돌아다녀도 되나 싶었지만 어쩌겠나, 귀찮은걸.
저녁은 이대명과 사러 팔레드시즈 쪽으로 갔다가 거기서 맥주와 함께. 원래 이날 저녁도 어딘가 찾아둔 맛집이 있었는데, 바다가 보이는 맥주집에서 바닷바람 맞으며 맥주 마시는 사람들을 보니, 그냥 여기서 먹자는 말이 절로 나오더라.
#엄마 생일
엄마 생일파티 겸 집들이로 본가 식구들 초대. 엄마, 아빠와 동생만 오는 줄 알았는데 할머니까지 오셔서 정말 대식구가 밥을 먹게 되었다.
초를 많이 꽂아야 해서 깔끔하게 숫자초로. 내년에는 6개만 꽂으면 되네. 울 엄마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었누, 흑. 엄마 생일이라니까 어머니가 떡도 보내 주셨다. 떡 킬러인 엄마가 거의 다 가져감ㅋㅋ
아빠가 선물로 가져온 달걀 꾸러미. 저런 거 보면 아빠는 은근 손재주가 있는데 나는 왜 똥손일까.
#동거인 생일
엄마 생일과 열흘 차이로 동거인 생일이 있어서 시가 식구들 초대. 역시나 집들이+생파를 한꺼번에 해결했다. 아무래도 시가는 본가보다 어려워서 한식보다 쉬운 양식으로 갔다. 연어 감태말이는 나름 비주얼이 훌륭해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밥이 너무 많이 들어간 듯... 몇 개만 집어 먹어도 몹시 배가 불러서 남은 음식을 이틀은 먹은 것 같다. 페레파파에서 주문한 토마토청포도 마리네이드 인기가 좋았다.
그리고 며칠 후 진짜 생일엔 한식으로. 몇 년 전에 핫했던 하트전, 나도 한번 해 봤다. 한 번 시도해 본 것으로 족하고 아마 다시 할 일은 없을 듯. 잡채는 마켓컬리에서 주문했고 내 입맛엔 시판 양념이 너무 달아 갈비찜 양념은 직접 했다. 키위 두 개를 갈아 넣었더니 설탕을 전혀 안 넣었는데도 달더라.
#동기 모임_엘 꾸비또
백년 만에 동기 모임. 코로나19로 주말 외출이 힘들어진 동기가 있어서 평일 저녁에 친구 회사 근처에서 만났다. 우리 집에서 1차로 수다 떨다가 친구 퇴근 무렵에 광화문으로 이동해서 2차. 모처럼 얼굴 보면서 근황 토크.
앞으로 금욜 저녁에 자주 보기로 했는데, 또 확진자수 200명 돌파하는 것 보니까 이런 평범한 일상은 요원한 것 같기도. 징글징글허다.
#꽃_화병이 없어서
결혼하거든 아무 이유가 없이도 꽃을 사들고 올 줄 아는 동거인이 되어 달라고 했고, 그 결과로 받은 꽃. 집에 아직 화병이 없어서 이상한 유리병에 담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꽃은 예쁘더이다.
조만간 화병 사야지, 하고 마음에 드는 화병도 골라 놨는데 귀차니즘을 주문을 미루다가 두 번째 꽃을 받았다. 두 번째 꽃은 아무 이유 없이 준 건 아니고 결혼한 지 두 달 된 기념. 50일은 안 챙기지만 두 달은 챙기는 아재 감성, 놀랍다 증말.
#여름엔 물회
1월에 <아이다> 본 이후로 장장 6개월 만에 뮤지컬 보러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배달시켜 먹은 물회. 소면이 기본으로 같이 오는 구성인데 탄수화물 성애자 동거인은 공기밥까지 추가해서 물회에 말아 먹었다ㅋㅋ 데이트 끝나고 같이 집에 오니까 기분이 묘하더라.
이날 <브로드웨이 42번가> 보고, 2주 후에 <모차르트> 봤는데, <모차르트> 관람한 날 7시 타임에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에 이어 확진자 급증... 뮤지컬은 또다시 당분간 빠이!
#시스터후드_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한국에서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분노보다 결혼했는데 아이를 안 낳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훨씬 크다고 느꼈어요.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결혼이라는 과업을 수행하지 못한 존재들로 취급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서는 내려다볼 수가 있는 거예요. '너희들은 이 레이스에서 탈락했지'라고 자기들 마음대로 생각하면서 이들에게는 '그래, 너희는 결혼이라는 위대한 무언가를 못 했으니까, 아이를 못 낳게 되었지'라고 보는 거죠. 당사자가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그런데 결혼을 했는데 낳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너희들은 결혼 제도라는 안정된 시스템 안에 들어와서 꿀만 빨면서 힘든 일은 안 하겠다고?' 하는 거죠. 사실 출산과 육아가 힘든 건 자기들도 아는 거예요. 근데 그걸 누군가가 안 하겠다고 하는 게 너무 싫고 미운 거죠. 이건 결혼한 사람이 조금 더 높은 지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도 이어져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지위를 획득해 놓고, 그 지위에 따르는 책임 같은 임신이나 출산을 안 하겠다는 게 너무 억울한 거죠.
꿀만 빨면서 힘든 일은 안 하겠다고?
그럼 안 되나요@_@ 애 낳으면 키워 줄 것도 아니면서.
#책읽아웃_측면돌파
같이 사는 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일단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살아가는 건 현실이잖아요. 그것에 있어서, '나는 그냥 이렇게 생겨먹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안 된다는 거예요. 서로 같이 살면서 나를 위해서건, 우리 둘을 위해서건, 우리 가족을 위해서건 내가 조금 더 노력해 보겠다는 자세, 안 될지언정 노력해 보겠다는 마음 자세를 가진 사람이랑 살아야지, '나는 원래 이래', '수십 년을 이렇게 살아왔어'라는 태도를 가진 사람과는 절대 결혼해서는 안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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