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 최지은 | 한겨레출판 | 2020
세상에는 세 부류의 여자가 있다.
어머니의 운명을 타고난 여자, 이모의 운명을 타고난 여자, 그리고 아이로부터 반경 3미터 내에 있어서는 안 되는 여자.
<나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
아이를 낳아 키우며 느낄 벅차고 뜨겁고 충만한 감정과 경험이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에 가끔 아쉬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끊임없이 이야기와 요구를 들어주는 하루하루를 내가 견딜 수 없을 거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중략) 나는 내 인생을 그렇게까지 침범하고 흔들어놓을 타인을 원하지 않는다. 물론 동시에 조금 불안해진다. 아이를 낳기 전에 나 같았던 사람들도 마음이 바뀌었겠지? 그들의 세계는 더 확장되고 풍성해졌겠지? 그리고 다음 순간 다시 생각한다. 그래도 나는 아니야. p.24
나는 한 인간을 세상에 내놓는 것만큼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수습하기 어려운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p.48
재경 /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쉬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외출도 어렵고 주위 아이 엄마들과는 아이 얘기만 하게 된대요. 가끔 제가 찾아가면, 자기가 스무 살 때부터 어떤 공부를 했고 무슨 일을 했는지 사회인으로서의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하더라고요. p.58
영지 / 사람들은 아이를 낳는 순간 크나큰 약점을 갖게 돼요. 그 약점을 제가 감당할 자신이 없는 거죠. 아이 때문에 내 신념을 굽히거나 자기 합리화하는 일이 생기다 보면, 나중에는 그런 나 자신을 보는 게 너무 힘들어질 것 같아요. p.63~64
영지 / 내가 아이 엄마가 되어서 지금과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세계가 이 모양 이 꼴일까? 세상의 다수가 부모잖아요. 그들이 결정하고 만드는 세상이, 제가 볼 때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안아요. 그런데 부모로서 자신들은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여린 존재를 보호하며 책임을 갖는 존재가 되었다는 식으로 말하면 너무 포장하는 느낌이에요. 성숙보다 오히려 미성숙해지는 면이 있고, 너무 가족 중심적으로 시야가 좁아지기도 하거든요. p.76
낳아주다,라는 어딘가 어색한 표현은 의외로 기혼 여성들에게서 종종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자신의 행복과 배우자의 욕구가 무 자르듯 분리되지 않고, 원 가족들의 기대까지 더해지는 경우 여성은 자신보다 '최대 다수의 행복'을 고려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p.105
우리에겐 출산을 선택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 가능성을 믿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p.107
승주 / 이혼은 두렵지 않아요. 제 자신이 사라지거나 다치는 게 더 공포예요. 남편을 사랑하지만, 이 사람과 사는 것 때문에 나 자신이 파괴된다면 그렇게 살 이유는 없어요. p.112
1) 부모로부터 배우자의 정서적 독립 2) 부모로부터 배우자의 경제적 독립 3) 무자녀에 대한 배우자의 강한 의지 4) 여성의 수입이 배우자보다 안정적이거나 높은 경우. 이 가운데 둘 이상의 요건에 해당하는 여성들은 시부모로 인한 출산 스트레스가 적거나 없다시피 했다. p.121
아마 내게 자식을 낳은 자매가 없었다면, 내가 지금처럼 아이를 낳지 않았을 때 마음이 훨씬 불편했을 것이다. 자신 혹은 배우자에게 조카가 있는 인터뷰 참여자 대부분이 이 '다행스러운 감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무자녀 부부에게 조카는 육아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깨닫게 해 주고, 부모의 출산 압력을 줄여주는 존재다. p.150
서른을 지나고 마흔을 향해 가는동안 알게 된 것이 있다. 여자들의 친구 관계는 대개 결혼을 중심으로 한 번, 출산을 기점으로 다시 한번 재편된다. 삶의 형태, 사는 지역, 관심사, 친밀도, 시간적 여유, 금전적 여유, 자유와 책임의 문제까지 서로 달라지는 부분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p.160
"아이 있는 친구와의 교류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어른의 교양'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싫으면 그 사람은 사실 친구가 아닌 거겠죠."
너무 맞는 말이라 마음 한구석이 쿡쿡 찔려왔다.
다만 이런 생각도 한다. '친한 친구였지만 이제는 멀어질 수밖에 없는' 관계의 변화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도 어른의 삶이 아닐까. p.168~169
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는 '못됐고'.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합의한 남자는 '착하다'고 평가되는 것은 '애도 안 낳아주는 여자랑 살아주는 남자는 참 관대하다'는 인식에서 나온다. 하지만 남자라면 누구나 아이를 갖고 싶어 한다는 말에 담긴 진실은, 남자들이 아이라는 존재 자체를 갈망해서라기보다 자기 몸 하나 상하지 않고 자기 성까지 따르는 아이를 편하게 얻을 수 있으니 쉽게 아이를 바란다는 쪽에 가까울 것이다. p.184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이 아이를 낳음으로써 인생에서 무엇을 잃게 되는지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네가 원해서(결정해서) 낳은 거잖아'라는 말로 상실에 대한 책임을 돌리고, 여성이 아이를 사랑하며 헌신적으로 돌볼수록 '새로운 행복을 얻었으니 감사하라'며 그의 삶에 생겨난 손실을 함께 복구하려 하지 않는다. 이 문제의 공동 책임자여야 할 남성이 책임을 간과하거나 회피하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p.225
나는 출산을 계획하는 여성이 휴직을 선택하기보다 '자연스럽게' 퇴사하게 되는 조직, 지역, 사회의 환경 속에서 여성이 뭉서을 '선택'할 수 있는지 혼란스러워졌다. 어떤 여성은 아이를 낳기 위해 일을 그만둬야 하고, 아이가 없는 여성은 '아이를 낳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 일을 시작하지 못한다.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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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추천에 리스트업 해 두고 있다가, 팟캐에서 최지은 작가님 인터뷰 듣고 바로 구매해서 읽었다. 동거인도 책 제목을 보더니 관심을 보이며 <아빠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라고 치환해 읽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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