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도시, 서울
착취도시, 서울 | 이혜미 | 글항아리 | 2020
"닫힌 방 안에서는 생각조차 닫힌 것이 된다." - E.H.카
쪽방은 없어저야 하는 걸까? 한 발짝만 물러서면 거리로 내몰릴 주거 난민들에게 쪽방은, 그러나 노숙을 막아줄 '방파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p.38
정상 가족, 정상 주거만을 사회적 규범으로 받아들여온 세상에서 '쪽방'은 소위 그 삶이 얼마나 처참한지를 드러내는 '빈곤 포르노'의 소재로만 쓰였을 뿐, 어찌된 연유로 쪽방에 살게 되었는지, 왜 벗어나지 못하는지, 일을 하는데도 왜 가난은 더 가난한 이들에게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는지를 우리는 질문한 적이 있었나. 그나마 워낙 수가 많은 고시원은, 사법고시 폐지 등으로 젊은 청년들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으로 언론 보도가 되고 있으나 쪽방촌은 '특별한 비극'이 없는 이상 외부인이 찾지 않는 도심의 '갈라파고스'처럼 남아 있다. p.58
쪽방촌 골목을 걷다보면 흔히 만날 수 있는 남성 주민에 비해 여성 주민은 잘 보이지 않는 존재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쪽방촌이 여성이 살기에는 더욱 적절하지 못한 환경이다 보니 대부분의 여성 홈리스는 쪽방을 얻어 들어가기보다는, 홈리스 시설에 들어가 단체 생활을 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p.75
2019년 10월 24일 국가는 관계 부처 합동 대책을 발표한다. '아동 주거권 보장 등 주거지원 강화 대책' 가운데 '등'에 포함된 내용으로 쪽방, 고시원 등에 사는 취약계층에 대한 주거 정책을 넣은 것이다. 말 그대로 '종합 대책'이었지만 어쩐지 기쁘지만은 않았다. 대책의 이름이 '아동 주거권 보장 등'인 것도, 취약한 아동 주거를 지원하는 데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지만 도시 빈민에게 들어가는 세금은 다들 아까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 반대를 최소화하기 위해 아동을 앞세웠다"는 공무원의 말에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빈자는 국가로부터 먼저 존재가 지워진다. p.116
무슨 거창한 청사진이 있는 것처럼 '자신은 다 계획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고작 열거하는 것은 집의 너무나 기본적 조건인 것들. 햇빛, 부엌과 방의 분리, 면적.
"계획이라기엔 완전 기본적인 조건들인데요?"
"그게 지금 90년대생의 운명 아닐까요. 늘 평균을 살려고 노력하지만 평균을 살 수 없는. 저는 '집'에 대해 크게 부여하는 의미는 없어요. 다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왔을 때 공간을 내어줄 수준만 되었으면 좋겠어요. 친구들도 초대하고. 마음속에 그런 이상향이 있지만... 근데 잘 안 되죠." p.180
외국의 슬럼과 달리, 한국은 도시의 빈자들이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등으로 숨어 들어가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는다. 한국의 빈곤은 더 이상 군집을 짓지 않고, '원자화'된 빈곤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p.181
"왜 자신이 처한 상황이 주거빈곤이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제 원룸 건축물대장에는 '위반'이라 돼 있잖아요. 제가 부산에서 가족이랑 살았던 아파트에는 그런 말이 안 적혀 있겠죠.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주거빈곤층이 아니고... 난 한 번도 주거빈곤층이었떤 적이 없고. 그래서 그때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거 같아요. 지금 부모님도 고향에서 잘 살고 계시니까. 여기는 '서울 집'일 뿐이지, '내 집'은 아닌. 그래서 그 개념을 잘 못 받아들이겠어요." p.189~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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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 덕분에 반지하가 주목을 받아서인지 알라딘 메인에 걸려 있어서 주문. 덕분에 흥미로운 르포를 읽었다.
2. 대학원 입시 준비를 하던 시절,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 중에 유독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많았다. 덕분에 옥탑방도 가 보고, 반지하도 가 보고. 대학원에 들어간 후로는 나도 원룸에 살았기에 책을 읽으면서 나의 20대 주거사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집에서 통학하며 입시 학원을 다니다 보니 통학에만 왕복 2시간 넘게 소요되는지라 시험을 앞두고 한두 달은 고시원에서 지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런데 고시원에 사는 친구가 절대 비추라며 뜯어말렸다. 강남 한복판에 있는 고시원이라 공사장에서 일하는 아저씨들도 많이 거주하는데 문단속 안 하고 잠깐 화장실만 다녀와도 절도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라고 했다. 밤에 마우스 클릭 소리만 들려도 옆방에서 조용히 하라며 벽을 친다나. 시험 앞두고 정서적으로 더 안 좋을 것 같으니 통학이 힘들더라도 웬만하면 집에서 다니라고 했다.
막상 고시원 알아보고 짐도 옮기려니 귀찮기도 하고, 친구의 조언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아 끝까지 집에서 다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3. 대학원생 시절 2년, 이후 프리랜서 시절 2년 동안은 원룸에서 지냈다. 둘 다 신축이고 대로에 인접한 곳이라 임대료가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대학원 다닐 때 살던 원룸은 워낙 크게 빠지기도 했고 낮에는 학교에서 생활하니 원룸에 살아도 별 불편함이 없었는데, 집에서 번역하는 프리랜서 생활을 하면서 원룸에서 사니까 답답함이 상상 이상이었다. 창이 커서 채광도 좋은 곳이었는데도 부엌과 작업 공간, 자는 공간이 나뉘어 있지 않으니 여간 답답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분리형으로 가자니 예산이 따라주지 않아 결국 본가로 돌아왔다. 무엇보다도 출퇴근을 하지 않는 프리랜서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여전히 작업실과 침실은 분리되지 않았지만 부엌이 따로 있고, 욕실이 넓다는 점만 해도 삶의 질이 올라가는 것 같았다.
몇 달 후면 또다시 이사를 한다. 짐 옮길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작업실과 침실이 분리된 곳에서 일할 생각을 하니 기대가 되기도 한다. 햇빛, 부엌과 방의 분리, 면적. 너무나 기본적이지만 그래서 더 중요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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