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 우치다 다쓰루 | 김경원 옮김 | 원더박스 | 2018
언어는 도구가 아닙니다. 우리가 언어를 사용하다기보다는 우리 자신이 언어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언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언어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습니다. 언어는 우리의 피이자 살이고, 뼈이자 피부입니다. 얼마나 양질의 언어인가, 어떻게 생긴 언어인가, 어떤 특성을 지닌 언어인가에 따라 우리 자신의 사고방식, 감각, 삶의 방식이 송두리째 영향을 받습니다. p.7
"아이패드로 책 읽어봤어? 잘 읽히지 않지?" 한마디고 그것은 책이 지닌 두툼한 느낌이 없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페이지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남은 페이지를 모르면 책을 읽기 어렵습니다. 아이패드에는 이런 단점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신이 책의 어느 부분을 읽고 있는 가에 따라 언어의 해석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p.62
똑같은 에피소드라도, 똑같은 형용사라도, 그것이 스토리 전체의 어느 페이지에 나오는지에 따라, 즉 앞쪽이냐 정중앙이냐 끝부분이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자연스레 그렇게 합니다. 여러분은 인간이 똑같은 독해력, 똑같은 독해 규칙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읽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우리는 해석의 방식을 바꿉니다. p.63~64
랑그에 대해 말할 수 있는 하나는 이것입니다. 즉 우리는 랑그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태어날 때 부모가 이야기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선택할 자유가 없습니다. 인간은 '모어 속에 던져지는 방식'으로 태어납니다. 랑그에는 관여할 수 없습니다. 태어나면서 쉼 없이 물로 적시듯 랑그를 듣고 자라기 때문에 어느새 그 언어로 사고하고, 그 언어로 숫자를 세고, 그 언어로 말장난을 하고, 그 언어로 네올로지즘neologism, 新語을 창조합니다. 그것이 랑그입니다. 문법적으로 파격적이고 처음 보는 표현을 만나도 금방 뜻을 알 수 있고, 또 파격적인 표현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장난 아니다'라든지 '정반대'라든지 들으면 곧장 뜻을 압니다. 몇 사람이 사용하다보면 '그런 일본어는 없어.' 하고 고칠 마음도 없어지고, 내버려두는 사이에 사전에 올라가기도 합니다. 외국어의 경우는 그렇지 않지요. 내가 영어로 문법적인 잘못을 저지르면 곧장 정정을 받습니다. p.130
문화자본으로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교양과 자신이 노력해서 체화한 교양은 확실하게 차이가 있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체험적 습득'과 '늦게 시작해 계통적으로 흡수한 방식'으로 몸에 익힌 문화자본은 한눈에 차이를 알아볼 수 있지요.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몸에 익힌 취향은 '문화적 정통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확신에 찬 자신감'을 드러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 교양은 '정당한 상속자를 통해 물려받은 가족의 재산 같은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인 무지 상태에 안주할 여유'를 허용합니다. 따라서 '모른다'는 말도 태연하게 할 수 있습니다. p.142
(프랑스 철학자 글은) 처음부터 독자를 한정해서 쓴 글이었습니다. 같은 교육을 받고,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정치적 상황에 관여한, 같은 지적 수준의 독자를 상정해서 쓴 글이었습니다.
(중략) 이런 언어 사용은 그 자체가 계층 형석적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너무 어려워서 의미를 알 수 없어.' 하는 독자는 '파티에 초대받지 않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런 뜻이지요. '너는 네 친구들과 파티를 즐겨라. 이곳은 네가 올 곳이 아니니까.' 롤랑바르트도, 푸코도, 데리다도, 라캉도, '어째서 여러분은 이렇게 어렵게 글을 씁니까?'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깜짝 놀라서 이렇게 말하겠지요. "내 글이 어렵다고? 그건 네가 독자로 상정되지 않아다는 뜻이야. 그러니까 읽지 않아도 돼." p.170~171
외국어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할 수 있다는 동기 부여로는 외국어를 제대로 배울 수 없습니다. 방향이 거꾸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외국어 학습의 의의는 원래 자기 자신의 종족이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이나 존재하지 않는 감정, 알지 못하는 세계의 관점을 다른 언어 집단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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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반납했는데, 소장해서 두고 읽을 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