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 임경선, 요조 | 문학동네 | 2019
'나다운 삶'을 찾기 위해서라면 나는 그 반대방법이 낫다고 봐. '하고 싶은 걸 찾기'보다 하기 싫은 걸 하지 않기'부터 시작하는 거지. 왜냐, '좋음'보다 '싫음'의 감정이 더 직감적이고 본능적이고 정직해서야. '하기 싫은 것 / 곁에 두고 싶지 않은 사람' 이런 것들을 하나둘 멀리하다 보면 내가 뭘 원하는지가 절로 선명해져. p.18~19
난 '어차피'와 '다 똑같아'라는 말 그 자체에도 반대하는 입장이야. 그것은 애초에 여러 가지 가능성을 차단하고, '안 좋아짐'을 기정사실로 해서 주변의 모든 것들을 단순하게 하향평준화시키는 단어라고 생각해.
"어차피 해봤자야."
"사람들은 다 똑같애."
나는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과는 가급적 거리를 두고 있어. 저 말은 자신의 게으름이나 부족함이나 잘못에 대한 면피로도 곧잘 쓰이고,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거나 남들이 뚜벅뚜벅 걸어나가려고 하는 걸 발목 붙잡으며 초를 치는 사람들의 말일 테니까. p.97
'다른 의견'이 있다는 것은 필연적인 인간의 조건인데, 소수의견이나 다른 생각의 가능성을 부정하겠다는 것은 세상사를 극단적인 흑과 백으로 나누어 보겠다는 심사나 다름없이, 정말이지 그 누구도 타인의 입을 막을 권리, 혹은 이렇게 말하라고 강요할 권리는 없는데, 한 치의 의심도 없다는 것은 사람을 바보로, 맹목적으로, 극단적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인데. p.109
우리는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해. 그 말을 하는 사람들 중엔 '본인 스스로를 위해서'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아무튼 내가 나의 생각을 존중하는 만큼 상대의 생각도 존중은 하되, 휘두르지도 휘둘리지도 말자. p.110
본적으로 '프리랜서'라 불리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불안심리가 유난히 클 수밖에 없는가봐요. 회사라는 단체 안에서 소속감을 느낄 수도, 월급이라는 매달 보장된 수입 속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도 없기 때문에 내일이라도 일감이 뚝 끊길 수 있다는 최악의 상황을 수시로 의식하며 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현재 충분히 일할 거리가 있음에도 점점 안심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되어가는 거죠. p.128
지금 일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야. 30대 중후반이 일을 가장 많이 해내는 나이 같거든? 일 능력과 체력이 가장 우수한 상태에서 교차하는 지점이 그 나이대가 아닐까 해. 게다가 프리랜서라면 최소 5년에서 7년 정도는 닥치는 대로 일을 받고 해봐야 향후 일을 선별하는 안목이 제대로 생기지 않을까? 그러니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신나게 일하면 좋을 듯. p.133
물론 프리랜서를 하다보면 리스크도 생기고 다른 여러 가지 것들을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생기겠지. 그래도 중요한 건 도중에 놓아버리지 않고 계속해나가는 게 아닐까.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프리랜싱을 하더라도, 처음엔 아무리 좋아 보이는 일일지라도 결국 그 세월을 이겨낼 수 있는가, 관심을 꾸준히 갖고 그 안에서 내가 확장할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한 것 같아. p.139
"이거 분명 당신이 좋아할 거야"라는 말은 은근히 이상한 말이에요.
말하자면 상대방이 저의 근미래를 확신하는 거잖아요. 뭐랄까 '감히'의 느낌으로요. 분명 그것은 주제넘는 일이죠. 어떻게 타인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내가 좋아할지 말지를 미리 결정할 수 있나요. 그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런데 그게 오래된 애정과 신뢰의 관계에서는 놀랍게도 가능해져요.
나는 널 좋아해. 너에게 관심이 있고, 그래서 널 오래 봐왔어. 그러다보니 나는 널 알아. 어쩌면 너보다 더. p.145~146
나는 사실 사적인 인간관계에서는 '머리'를 전혀 쓰지 않아. 이게 선을 넘는 것인지, 영역을 침범하는 것인지, 상대를 서운하게 하는 일인지, 주제넘는 오지랖인지 미리 이리저리 고민을 안 해. 바꿔 말하면 만약 내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나도 모르게 한번 멈칫하고 이 말을 해도 될까 말까 신중해지기라도 한다면... 그건 이미 불편한 관계이자 어느 정도 공적인 관계라고 해야겠지. p.151
'대외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이인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야. 서로에게 '언제라도, 아무 생각 없이, 아무 말이나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될 것. 특히나 같이 살고 있다면 참지 말고, 자신이 솔직하게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상대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갈등을 겪는 게 힘겹고 두려우니까 그냥 적당히 맞추면서 넘기거나, 핵심을 피하거나, 익숙함으로 산다고 체념하거나, 남편에게 다 맞춰주는 '너그러운 엄마 역할'은 하고 싶지 않아. 내 마음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격한 싸움이나 피눈물과 절망감이 동반된다고 해도, 이 사람에게만은 내 솔직한 마음을 전해야겠다고 늘 다짐해.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p.153
인생의 한 시기가 끝나고 문이 닫혀버리면, 내 앞에 다른 문이 또 새로 열리게 될 거라는 사실을 우린 오랜 경험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 이런 진실의 말들이 먹먹하게 들릴 때가 있다. p.156
요새는 30~40대의 연애 안 하는 비혼 인구도 많은데 나는 젊은 10대 20대보다 나이가 조금 들고 성숙해진 다음에 경험하는 사랑도 참 좋지 않나 싶어. 젊었을 때는 상대가 내 기준에 미달하면, 내 마음에 안 드는행동을 하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하며 부들부들 떨지만 나이가 들어 다양한 경험을 거치면서 자기 자신의 불완전함을 깨닫게 되니, 상대에 대해서도 조금 관대하고 너그러워질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 나이들면 확실히 열정이 넘치거나 푹 빠지는 일은 줄어들지 모르지만, 그 대신 상대의 선하고 아름다운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이나 상대의 결핍을 이해하는 능력은 깊어지니까. 아니 정확히는 깊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p.181
이모티콘을 최소화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면 좋아요. 보통 우리가 이모티콘을 쓰는 경우는 고맙거나 기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혹은 난처하거나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등등 자신의 감정을 손쉽고 즉각적으로 연출해야 할 때인데요. 이걸 문장으로 표현해보는 연습을 하면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 이 사람이 아주 공들여서 이 메일을 썼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거예요. p.231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절로 약해지잖아. 그것이 전혀 흉이 아니고. 아무튼 이별이 온다고 해도 그 슬픔이 고통스러워서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언젠가 이별이 올 것까지도 받아들이며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p.240
몸의 문제는 정말 중요하다고, 사람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만짐touch'이 필요하다고. 나중에 노인이 되면 그 누구도 나를 만지지 않게 되는 일이 가장 서러운 일이라고. 각자도생의 시대에 스스로를 위무하는 데엔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으며 우리는 어디까지나 타인의 체온을 필요로 한다고. 혼자 홀가분한 것도 좋지만 둘이 서로를 안을 때의 그 기쁨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p.258~259
깊은 우정은, 공통의 적이 있든 없든, 일에서 잘나가든 못 나가든, 실연한 상태든 목하 열애 중이든, 돈이 있든 없든, 그런 것들과는 관계없이, 그 어떤 의무감 없이도 그저 보고 싶고, 그냥 '아무거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해. 별 내용도 없는 문자나 이메일이 와도 그저 즐겁고 신나고, 만나면 서로에게서 힘을 얻고, 못 만나더라도 불안해하거나 의심하지 않는 그런 관계는 얼마나 소중한지.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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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읽고 이제야 밑줄 정리. 체크한 부분이 너무 많아서 이것도 나름 추린 것.
책을 읽었던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이때에 '듣똑라'에 요조 님이 나오셔서 다시 리마인드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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