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예능
아무튼, 예능 | 복길 | 코난북스 | 2019
한국 사회에서 지방 자체가 소외나 박탈감을 느끼기 쉬운 공간이지만, 미디어의 극단적인 서울 중심주의는 서울에 대한 지방의 식민성을 확대하고 불만을 부추기고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서울에 가야 저런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거라는 빠지기 쉬운 착각을 조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지방 청년들에겐 그렇게 조성된 미디어의 환경 자체가 삶의 어떤 한계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 같다. p.33
학교에서 권하는 가장 이상적인 미래의 가치는 '안정'이었다. 기본적으로 상정된 사회는 한국이었고, 이곳에서 안정을 획득하는 방법은 학업뿐이었다. 그리고 그건 개인의 각성과 노력이 먼저였다. 그것 외에는 없는 것 같았다. 학습에 재능이 있거나 부족한 재능을 뒷받침해 줄 환경이 되는 극소수 아이들이 그 가치를 향해 조금씩 성취해가고 있을 때, 학교는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에게 순응이나 포기 외에는 어떤 가치도 가르칠 예정이 없었다. p.61
'국민 예능' 역할의 일환으로 시의적인 주제를 고정 패널끼리 토론하는 것도, 여성은 이영애와 김연아처럼 신성시되는 자리에서만 볼 수 있거나 남성 출연자들의 들러리로 출연해 이유 없이 인신공격을 당하는 역할로 제한되어 있는 것도 더는 흥미롭지 않았다. 역사를 말하고, 소외된 것을 듣고, 불의에 참지 않으며, 육체의 한계에 도전하는 모든 기회가 오로지 남성에게만 주어진 방송을 보면서 공감하고, 감동하고, 응원하는 일도 앞으로는 할 수 없다. p.100
유명인이 과오를 저질렀을 때 어떤 식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매뉴얼이 따로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많은 여성이 분명하게 느끼는 건 남성 연예인들에 대한 업계의 한없는 자비로움이다. 용서의 주체는 대체 누구인가. '사과했으니까, 밥 벌어 먹고 살게 해 줘'라는 식의 등장은 황당하고 폭력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p.161
지금까지는 중년 남성들의 섹스 토크 같은 것들이 '위트' 정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무서워서 뭔 말을 못하겠다' 하면서도 결국 말을 해온 사람들은 정말 이제 닥쳐야 할 때가 왔다. p.167
-
한때 <무한도전>을 열심히 보던 시절도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예능을 보지 않는다.
가끔 보더라도 재미있는 표현 수집을 위해 보는 일의 연장. 자연스레 <아무튼, 예능>에도 별 관심이 없었는데 호평이 자자하여 읽어 봤다.
댓글
이 글 공유하기
다른 글
-
메이크 타임
메이크 타임
2019.12.23 -
단지 결혼을 하고 싶은 건데 이게 다 무슨 일이래요
단지 결혼을 하고 싶은 건데 이게 다 무슨 일이래요
2019.10.26 -
쉬운 일은 아니지만
쉬운 일은 아니지만
2019.10.26 -
웹소설의 충격
웹소설의 충격
2019.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