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 | 부너미 | 민들레 | 2019
"결혼한 여자가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계속 변하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말하는 페미니즘이 누군가(무언가)를 부정하고 후회하고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더 잘 살고 서로를 더 선명하게 하기 위한 것임은 변치 않을 것입니다. p.13
우리는 멀찍이서 모든 삶의 조건을 헤아리거나 경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내 삶의 한계를 끌어안고 그 속에서 좀 더 행복하고자 발버둥 칠 뿐이다. p.31
나는 '어떤 아내 또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역할이 나를 집어삼키지 않는 이상 '나'라는 사람과 조화를 이루는 선에서 감당하면 될 일이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운다고 해서 만나기 어려운 사람이 되지 않기로 했다. 가족을 유지하는 데 에너지를 다 쓰지 말고 가족 외의 인간관계도 소중히 가꾸고자 했다. 나의 관심사를 추구하고 개인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려고 했다. 남편과 아이를 살피는 마음으로 나의 필요를 살피려고 애썼다. 탯줄을 자르는 순간 아이를 나와 독립된 존재로 여기고자 했다. 모성애를 의심받을지언정, 나를 지키고 싶었다. p.33
부부가 서로를 부르는 말에 있어, 남자들은 선택지가 많지만 여자들은 선택지가 좁고 한정되어 있다. 남편이 아내를 지칭할 때는 '마누라, 여편네, 각시, 처, 와이프' 등 상황에 따라 쓸 말이 다양하지만, 아내가 남편을 부를 때는 '남편, 신랑'이 전부다. 결혼할 때는 신랑과 신부지만 어느새 신부는 사라지고 신랑만 남아, 결혼한 지 10년이 지나도 어떤 남편들은 신랑으로 불린다. p.71
남편이 벌어오남편이 벌어오는 임금에는 내 돌봄노동이 숨어 있다. 남편 혼자 돈 버는 노고를 인정받는 건 부당하다. 남편의 성취는 나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사람들은 남편이 버는 돈으로 내가 편하게 산다고 하지만 사실은 내가 하는 돌봄노동 덕분에 남편이 안정적으로 일하며 자신의 가치를 올린 것이다. 남편이 버는 돈의 절반은 정당한 내 몫이다. p.82
나와 남편을 향한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기울어져 있다. 아내가 남편을 챙기는 것은 당연해서 '애부가'나 '가정적인 아내'라는 말은 없다. 대신 남편은 아내를 조금만 챙겨도 '애처가' '가정적인 남편'이라며 박수를 받는다. 이상한 세상이다. p.88
남편이 대단하다는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다.
"남편이 대단하다니요? 남편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성장할 동안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싸워주는 게 얼마나 어려웠는데요! 남편은 스스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저의 수고를 지우지 마세요!" p.88
남자는 소방관, 과학자, 여자는 간호사, 유치원 교사로 분류하는 여러 직업교육 콘텐츠에 분개하면서도, 정작 아들이 간호사나 유치원 교사를 꿈꾸는 것은 두렵다. 우리는 단단하게 굳어진 성역할 구분 속에서 살고 있다.
여자아이들에게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남자아이들에게도 뭐든지 할 수 있다고 가르쳐야 한다. 남자아이들을 위한 젠더교육이 구체화되지 않는다면 성역할에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다. p.133~134
경력단절여성. 육아 때문에 취업하지 못한 여성을 문제로 보는 쓰디쓴 말이다. 한창 일할 나이의 여성이 집에서 애 보고 살림하는 것을 노동력 손실로 접근하는 관점이다. 또한 육아와 집안일이 결코 경력이 될 수 없음을 단호히 못 박는다. 집에 있는 여성에 대한 연민과 동정, 그리고 그만큼의 무시가 담겨 있다. p.146
내가 돈을 벌고 싶은 첫 번째 이유는 남편 혼자 벌게 하고 싶지 않아서다. '이런 배려 넘치는 착한 아내라니!' 하고 감탄한다면 오산. 남편에게 가부장의 권력을 주고 싶지 않다는 의미다.
(중략) 돈을 벌고 싶은 두 번째 이유는 결혼생활에 대한 심한 회의감에 시달릴 때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어 결혼을 유지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결혼생활을 지속하는 것은 아이를 같이 키우기 위해서, 서로를 동반자이자 동료로서 지지하고 싶어서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결혼생활에서 느끼는 불합리를 견뎌내는 이유가 돈이고 싶지 않았다. 그럼 비참할 것 같으니까. p.154~157
우리에겐 서로가 필요하지만, 그(그의 돈)가 없으면 못 사는 것과 그가 있으니 좋아서 사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제아무리 '자유인'이라고 외친들 타인에게 경제적으로 의탁하는 이상 자유로울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구속력은 정신에까지 미치기 마련이고, 우리는 서로에게 대가 없이 무언가를 내어줄 정도로 헌신적이고 고귀하지도 않다. p.163
하나의 과업만 잘하기도 어려운 상황인데, 세 가지 모두에서 '보통' 이상의 성적을 받기 위해 애쓰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못함'이라는 평가를 받아도 괜찮은 영역과 '매우 잘함'이라는 평가를 받아야만 하는 영역을 나누기로 했다. 한정된 시간과 예산이라는 현실 앞에서, 이 사회가 원하는 엄마의 삶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기준으로 순위를 결정했다. p.178
나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여자의 적은 가부장제다. 대부분의 여자는 누군가의 딸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오며 가부장제의 억압을 몸소 겪었기에, 그 누구보다 '여자의 입장'을 깊이 이해할 가능성을 지녔다. 며느리의 입장을 헤아리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시어머니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앞으로는 '고부 갈등'보다 '고부 연대'가 더 많이 회자되길 기대한다. p.204
-
기혼 여성의 페미니즘. "남편이 대단하다니요? 남편은 스스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저의 수고를 지우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