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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업일치를 꿈꾸며 살아요

불멸의 신성가족

  • 2019.06.07 13:10
  • 冊 - 밑줄

불멸의 신성가족 | 김두식 | 창비 | 2019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데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서는 하기 어렵다. 그럴 때 당신은 학연, 지연, 혈연을 찾아 누구에겐가 전화를 건다. 그러면 금방 해결된다. 당신에겐 전혀 죄의식이 없다. 그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의 기본일 뿐이니까.

그러나 당신처럼 그렇게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학연, 지연, 혈연을 갖지 못한 사람이 누구에겐가 돈을 주고 어떤 일을 해결했을 때 당신은 그건 부정부패라고 분노한다.

당신은 그러한 이중 기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연고에 의한 청탁은 괜찮고 금품을 이용한 청탁은 범죄라면, 그건 정말이지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 강준만 <서울대의 나라>


오랜 세월 서울대, 연고대로 상징되는 소수의 배타적 지배계급에서만 사법시험 합격자가 주로 배출되었고, 법의 운용도 그러한 불평등체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외부에 있는 사람들은 법적인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자기하고는 완전히 낯선, 어떤 타자성의 세계에 던져졌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독과점체제 내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문제가 "가족 내부의 일"이 되기 쉬운 반면, 외부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신뢰가 생길 수 없습니다. p.89


'돈을 받든, 청탁을 받든, 사건에 영향을 주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은 우리 법원과 검찰을 오랜 세월 지배해온 특별한 믿음입니다. 돈을 받아서 먹고 마시는 데 쓴 것과 그 돈을 통째로 주머니에 넣은 것을 다르게 생각하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나눠 "먹은 것"은 죄가 아니지만, 나눠 "가진 것"은 죄가 될 수 있다는 얘긴데, 이는 판검사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상당히 폭넓게 공유되는 기준으로 보입니다. p.101


돈을 돌려준 경험을 이야기한 전현직 판검사들 중의 누구도, 돈을 준 변호사를 입건하거나 고발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누군가 이런 조치를 취하면 그는 어떤 평판을 얻게 될까요. 일반인들은 혹시 그런 판검사를 청렴하다고 칭송할지 모르지만, 좁은 법조계 바닥에서는 '또라이'로 찍힐 개연성이 높습니다. p.111


'거절할 수 없는 돈'은 판검사들이 변호사에게 용돈을 받으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합리화 수단으로 오래도록 활용되었습니다. 나는 원치 않으나 '남들이 다 받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받는다'는 공동의 보호장막 아래에서 모두의 잘못이 면죄부를 받아온 셈입니다. 돈이 좋아서 받는 것은 아니라면서, 외국의 어떤 나라보다 더 관행화된 돈을 만힝 받아 챙겼습니다. 결국 '거절할 수 없는 돈'이란 '돈을 받고 싶은 욕망'이 만들어낸 일종의 중화 또는 합리화 기술입니다. p.114


장 판사의 말처럼, 가족 중에 판검사가 나오면 기뻐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깔린 것은 언제 당할지 모르는 '억울한 일'에 대한 불안입니다. 이런 불안이 없다면 "전화 한 통이라도 해줄" 사람을 그리도 강력하게 기대할 이유가 없지요. p.162


권 변호사는 "말 잘 들어주고 부탁 잘 들어주는 판사가 출세한다"는 이야기가 법조계에 있다고 전합니다. 그런 사람'만' 출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사람들이 좀 더 잘되는 '경향'은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렵게 부탁했다가 거절당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 불쾌감을 기억할 것이고, 언젠가는 불이익으로 되갚아줄지도 모릅니다. 경쟁이 심한 법조계에서 아무래도 그런 불이익을 잘 피해간 사람이 승진이나 출세에 유리할 수밖에 없지요. p.174


승진은 단순한 명예나 권력의 확장일 뿐만 아니라, 훗날의 변호사 업무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이런 승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평판'이므로, 판검사들은 누구라도 자신의 평판을 관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서는 인사권을 쥔 사람뿐만 아니라 사건을 들고 오가는 변호사들에게도 최소한 욕은 먹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부담 때문에 판검사들은 청탁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p.178


판검사로 일하면서 실력을 쌓고, 그 실력을 이용해서 변호사로 돈을 버는 것도 문제입니다. 결국 국민들의 세금이 변호사를 키우는 데 쓰이는 셈입니다. 원래 변호사로 일하면서 실력을 쌓고 그 실력으로 판사가 되어 정의로운 재판을 하는 것이 상식에 부합합니다. 젊은 경력 법관들이 능력과 효율 면에서 탁월한 것은 사실이지만, 젊은 나이에 판결부터 시작하느라 기계적 효율성만 갖추게 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p.183


훌륭한 판검사가 되기 위한 열정, 헌신, 인간에 대한 애정 같은 것은 전혀 평가하지 않은 채, 오로지 "지적인 능력 하나를 테스트하는 방식"으로 살인적인 경쟁"을 거쳐서 특권을 갖게 하는 사법시험이야말로 우리의 잘못된 교육시스템을 상징했습니다. "오로지 자기 욕망 하나에 의해서 수년에 걸쳐서 자기를 채찌질해서" 그 합격증을 "거머"쥐도록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비인간화 과정이란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이겨낸 사람들을 의지의 화신처럼 칭송하는 사회 분위기도 정상은 아닙니다. p.236


우리 사법제도에서 중요사건을 단독이 아닌 합의부로 진행하는 이유는 여러 명의 판사가 함께 토론하여 더 올바른 결론을 도출해내라는 뜻에서입니다. 그러나 법조 대선배이자 스승인 재판장을 눈앞에 두고 배석판사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말이 합의부지 아무래도 재판장인 부장판사 한 사람의 의견만 반영되기 십상입니다. p.267


판검사들은 퇴임하면 곧바로 로펌으로 갑니다. 그렇게 바로 가려면 "미리 현직에 있을 때 물밑 작업을 길게는 1년, 짧네는 몇 달을 했을 것"인데, 물밑 작업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판검사들이 그 로펌에서 오는 사건들을 처리하고 있으니 문제라는 것입니다. p.298


기자와 검사는 철저히 공생관계를 맺습니다. 검사가 아무리 사건을 열심히 수사해도 "기사가 한 줄도 안 나오면 그 사건은 죽습니다". (중략) 말로는 "우리가 기소하는 내용만 보도해달라"고 하지만, 검찰 입장에서도 주변 여론을 봐가면서 수사를 해야 하고, 검찰에 우호적인 여론을 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수사 진행상황을 "조금씩 흘려줄 수밖에" 없습니다. 피의자가 "나쁜 놈이라는 스탠스"가 유지되지 않으면 여론이 무고한 표적수사 또는 정치수사라는 쪽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자들은 검사들이 그렇게 흘려주는 것을 "받아먹습"니다. p.306~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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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식 선생님이 황정은 작가와 '라디오 책다방'을 진행하던 시절부터 읽어야지, 읽어야지 생각만 하다가 개정판 나온 김에 드디어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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