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커밍

비커밍 | 미셸 오바마 | 김명남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


나는 마지못해 공인으로 살기 시작한 뒤로 세계에서 가장 유력한 여성으로 치켜세워졌고, '성난 흑인 여자'라고 깍아내려졌다. 이런 말로 나를 비방한 사람들에게 특히 어느 대목이 못마땅하냐고 묻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성난'인지, '흑인'인지, '여자'인지? p.10


패배감이란 실제 결과가 나타나기 한참 전부터 느껴지는 감정이고, 자기 회의와 함께 증식하는 취약함이다. 그리고 두려움이 그 취약함을 부추긴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p.70


그들에게도 의심하는 사람이 있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성공한 후에도 대형 경기장을 메울 수 있을 만큼 수많은 비판자와 회의론자가 따라붙는다. 그들은 그가 사소한 실책을 저지를 때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하고 외친다. 그런 소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그 소음을 견디는 법을, 대신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에게 의지하며 목표를 꿋꿋이 밀고 나가는 법을 터득했다. p.99


버락은 말했다. "어느 쪽이 더 낫겠습니까? 지금 이대로의 세상에 안주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마땅히 와야 할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애써보는 것입니까?"

마땅히 와야 할 세상. 이것은 그가 처음 사회운동에 나설 때 읽었던 어느 책에서 가져온 문구였고, 내 마음에도 오래 남을 말이었다. 내가 볼 때 버락을 움직이는 동기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기도 했다. p.162


이제 나는 행운 못지않게 결핍 역시 처음에는 아무리 작더라도 눈덩이처럼 빠르게 불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p.238


저녁 식사 딜레마에 관해서는, 나와 아이들에게 더 바람직한 기준을 새로 정했다. 우리가 일과를 정하고 그것을 고수하는 방법이었다. 저녁은 매일 6시 30분에 먹기로 했다. 7시에는 아이들을 목욕시켰고, 책을 읽어주고 꼭 안아준 뒤, 8시 정각에 불을 껐다. 우리가 이 일과를 철석같이 지켰기 때문에, 이제 저녁 시간에 대느냐 못 대느냐는 순전히 버락의 책임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아이들에게 아빠 얼굴을 보여주겠다고 저녁을 미루거나 졸린 아이들을 깨워두는 것보다 이편이 훨씬 합리적이었다. 아이들이 심지 굳은 사람으로 자랐으면, 또 구시대적인 가부장제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는 내 바람에도 맞았다. 아이들이 혹시라도 집안의 남자 가장이 귀가한 뒤에야 진짜 삶이 시작된다고 여기는 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우리는 이제 아빠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가 우리를 따라잡아야 했다. p.277


일은 재미있고 보람찼다. 그래도 일에 에너지를 몽땅 쏟지는 않도록 주의했다. 아이들 몫을 남겨두어야 했다. 버락의 정치 경력을 용인한 뒤로ㅡ즉, 그가 마음껏 자신의 꿈을 추구하도록 허락한 뒤로ㅡ나는 내 일에 들이는 노력을 좀 줄였다. 거의 의도적으로, 스스로의 야망에는 약간 무감각해졌다. 예전 같았으면 해보겠다고 적극 나설 순간에 그러지 않고 물러났다. 내가 충분히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었을 것 같지만, 스스로가 더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일이 있음을 인식했다. (중략) 일하는 엄마는 늘 타협해야 하는 처지라고들 말하는데, 내가 그랬다. 예전에는 어떤 일에든 몸을 사리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더 조심스러웠고 내 시간을 지키려 했다. 집에서 쏟을 에너지를 남겨야 했기 때문이다. p.281


버락은 사람들에게 미국의 분열을 치유해야 한다고 열렬히 호소했다. 사람들 대부분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다고 믿는 고결한 이상에 호소했다. 하지만 그동안 분열을 너무 많이 보아온 터라, 내 희망은 그렇게까지 굳건하지 못했다. 버락은 누가 뭐래도 흑인이었다. 나는 그가 정말로 승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p.302~303


사람들이 내게 원하는 전형적인 모습이 무엇인지는 잘 알았다. 완벽하게 단장한 인형 같은 모습으로, 얼굴에는 그린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남편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그를 응시하는 아내. 하지만 그것은 내가 아니었다. 앞으로도 그런 아내가 될 수는 없었다. 남편을 지원하기는 하겠지만, 로봇이 될 수는 없었다. p.309


여성의 목소리를 묵살하는 손쉬운 방법은 그를 잔소리꾼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p.358


사람들은 클린턴의 성별을 들먹이면서 쉴 새 없이 공격했고, 여성에 대한 온갖 추악한 고정관념을 덧씌웠다. 그녀를 남자를 쥐고 흔드는 여자, 바가지꾼, 쌍년이라고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를 쇳소리라고 비난했고, 그녀의 웃음소리를 암탉 울음소리라고 표현했다. 클린턴은 버락의 경쟁자였으니 당시에 내가 그녀에게 특별히 따스한 감정을 느낄 계제가 아니었음에도, 그녀가 저 극심한 여성 혐오를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맞서 싸워나가는 모습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p.358


흑인 사회에는 오래된 금언이 하나 있다. 남들보다 두 배 이상 잘해야 절반이라도 인정받는다. p.391


강당에 모인 얼굴들을 가만히 둘러보면 알 수 있었다. 이 아이들이 갖춘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제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지난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거기에는 히잡을 쓴 학생도 있었고, 영어가 모어가 아닌 학생도 있었다. 또 다양한 음영의 갈색 피부를 가진 학생들이 있었다. 이들은 자신에게 씌워진 고정관념을 타파하고자 애써야 할 것이고, 스스로를 내보일 기회를 얻기도 전에 남들이 마음대로 자신을 규정하는 현실과도 맞서야 할 것이다. 가난해서, 여성이라서, 유색인종이라서 남들에게 없는 사람 취급당하는 현실과 싸워야 할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찾기 위해서, 위축되지 않기 위해서, 주저앉지 앉기 위해서 애써야 하겠지만, 현실은 배움을 이어가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p.422


내 사연에서 중요한 부분은 표면적 성취가 아니라 그것을 떠받친 기틀이었다. 즉, 그동안 내가 수없이 받았던 작은 지지들, 자신감을 키우도록 도와준 사람들이 핵심이었다. 나는 그들을 모두 기억했다. 내게 더 나아가보라고 손짓해주었던 사람들을, 내가 도착할 장소에서ㅡ주로 흑인도 여성도 아닌 사람들이 역시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둔 환경이었으므로ㅡ분명히 맞닥뜨릴 냉대와 모욕을 염려하여 최선을 다해 예방접종을 시켜주던 사람들을. p.469


사람들과 섞이는 것은 중요했다. 사실은 그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나를 나 자신으로 느끼는 방법,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휩쓸리면서도 사우드사이드 출신의 미셀 로빈슨으로 남는 방법이었다. 나는 옛 생활을 새 생활에 엮어 넣었고, 사적인 관심사를 공적인 활동에 엮어 넣었다. p.477


어느 여성이라도 동의할 텐데, 여성들 사이의 우정은 이렇듯 교대로 주고받는 작은 친절히 무수히 쌓여서 만들어진다. p.478


우리는 다들 아이들, 배우자, 일에 희생하는 데 너무 익숙했다. 내가 삶의 균형을 잡아보려고 애쓴 시간을 통해서 깨달은 바는, 우리가 이따금 한 번씩 그 우선순위를 뒤집어서 자신만 챙겨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p.478


내게 무언가가 된다는 것은 어딘가에 다다르거나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움직임, 진화하는 방법, 더 나은 자신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과정이다. 그 여정에는 끝이 없다. 나는 엄마가 되었지만, 아직도 아이들로부터 배울 것이 많고 줄 것도 많다. 나는 아내가 되었지만, 아직도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인생을 함께하는 일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중이며 때로 그 어려움 앞에서 겸허해진다. 나는 어떻게 보면 권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지만, 아직도 때때로 불안하고 내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는다고 느낀다.

무언가가 된다는 것은 하나의 과정이고, 하나의 길을 걸어가는 발걸음이다. 인내와 수고가 둘 다 필요하다. 무언가가 된다는 것은 앞으로도 더 성장할 여지가 있다는 생각을 언제까지나 버리지 않는 것이다. p.554


상대가 수준 낮게 굴더라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갑시다. p.539


획일성은 더 많은 획일성을 낳을 뿐이다. 우리가 그 상황에 대응하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는 한. p.553

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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