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 김원영 | 사계절 | 2018

 

장애를 가진 삶은 생리적 고통이 수반되고, 일상에서 많은 불편을 겪으며, 타인의 혐오나 배제를 겪기도 한다는 점에서 '잘못된 삶'을 규정하는 대표적인 경험들의 집합이라고 말해도 좋다. 인종적*성적 소주자, 나이가 많은 사람들, 장애는 없지만 배제되고 소외되기 쉬운 외모를 가진 사람들의 경험을 장애인들은 얼마간 다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장애인들이 종중받고 매력적인 존재로서 자신을 표현해낸 역사와 이론적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면, 우리 중 누구도 '잘못된 삶'이라고 규정될 이유가 없을 것이다. p.15~16

 

인간은 자신을 스스로 관찰할 수 있을 때는 수치심을 느끼지만, 절벽 끝에 매달렸을 때는 스스로를 관찰하는 방성적(성찰적) 시선을 잃기 때문에 수치스러울 겨를이 없다. 이때 우리의 의식에서는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가 일치한다. 오로지 하나의 감정, 한 명의 존재, 유일한 현실만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압도한다. p.47

 

지하철을 타고 내릴 때 종종 노인들이 문이 열리자마자 올라타느라 다른 승객들과 충돌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곤 한다. 이를 과거 세대가 현대적인 규범에 적응하지 못해 생긴 문화지체 현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들이 좌석에 앉지 않으면 너무나 힘든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릎과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쑤시는데 참을성 있게 지하철 탑승 예절을 준수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p.60

 

사람들이 품격을 위해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는 퍼포먼스와 존엄을 위해 만들어내는 퍼포먼스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를 직관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 존엄을 구성하는 퍼포먼스에서는 그에 참여하는 모든 행위자가 실재(진실)을 공유한다. 그 공유하는 실재 위에서 서로가 서로의 연기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면서 대등하게 퍼포먼스에 참여한다. p.66

 

유전자진단기술을 통해 장애아를 '걸러낼' 수 있는 사회는 해당 장애에 대한 의료, 사회복지 지출에 둔감해지기 쉽다. 그냥 '걸러내면' 될 것을 굳이 낳아서 치료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기술을 사용하지 않은 개인은 사회에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죄책감은 타당할까? p.115~116

 

키가 아주 작거나 얼굴에 커다란 반점이 있는 것은 나의 책임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몸으로 태어난 것이 추하고, 존엄하지 않고, 하찮다고 여겨지는 상황에 대해서는 나도 책임을 부담한다. 나에 대한 그런 손가락질의 원인은 세상의 잘못된 평가와 위계적 질서이지만, 그에 맞서 내 존재의 존엄성과 아름다움을 선언할 책임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이것이 '정체성을 수용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취하는 실천적 태도이다. p.154

 

어떤 사람을 존엄한 태도로 대우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자기 인생의 자율적인 형성 주체, 말하자면 작가/저자author로서 존중함을 의미한다는 견해가 있다. 이는 현대 입헌민주주의 국가의 헌법 질서가 인간의 존엄을 정의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입장이다. 우리나라의 헌법재판소, 독일의 연방헌법재판소를 비롯한 각 나라의 최고법원은 그와 유사한 견해로 인간의 존엄을 정의하고 있다. 자기 이야기를 자율적으로 써 내려가는 자기 인생의 저자라는 개념은 우리 모두가 각자 고유한 이야기와 관점을 가진 개별적인 존재임을 강조한다. 우리가 차별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는 이유 역시 우리가 가진 고유성, 자기 삶을 직접 작성하는 저자성authorship이 침해되기 때문이다. p.185~186

 

뉴욕대 로스쿨 교수 켄지 요시노는 현대 사회에서 장애인, 소수 인종, 성적 소수자 등을 대놓고 차별하고 배제하는 일은 많이 없어졌지만, 이 사람들에게 주류 집단에 동화同化되기를 요구하는 이른바 '커버링covering' 압력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커버링은 말하자면, 자신이 가진 비주류적 특성을 '티 내지 말라'는 요구다. 여성을 차별하지는 않지만 여성의 몸이 가진 특별한 상황(생리나 출산 등)을 티내지 말 것을 암묵적, 명시적으로 요구하는 조직 문화,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지만 장애로 인한 특성을 숨기기를 원하는 사회 분위기 같은 것이 그 예다. p.199

 

장애인이 자신의 이동할 권리를 발명하고, 이를 법제도에 진입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 이동해서 거리로 나와야 했다. 이는 권리가 법제도 안에서 국가권력의 힘을 통해 인정되어야만 실질적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권리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 자신의 신체나 정신 혹은 처한 사회적 상황의 문제를 권리의 언어로 표현하고 집단적으로 공유하고 법제도 안으로 진입시켜 실질적인 힘을 갖도록 정치적, 도덕적, 헌법적 의미를 부여하는 활동 자체가 '잘못된 삶'들의 존엄성이 사회적으로 승인되는 과정이다. p.251

 

우리의 노력으로 평등을 위한 법과 윤리,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ly correct' 일상의 규범을 추축해나가더라도, 매력 자원이 부족한 사람들이 소외되는 것을 막을 방법은 거의 없다. 말하자면 완전한 '매력차별금지법(도덕)'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p.253

 

나의 삶과 무관한 장애인의 신체, 주름지고 지혜가 가득한 노인의 얼굴, 아침 일찍 출근해 거리를 청소하는 노동자의 땀방울 같은 것. 타자를 미적으로 숭배하는 태도는 자기기만을 불러온다.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내 삶으로 들어올 때면, 그것을 거부하고자 하는 충동이 우리를 괴롭힌다. p.261~262

 

장애인이나 병에 걸린 사람들이 우리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며 성금을 보내고, 구세군에 거금을 쾌척하면서도 막상 그 신체와 5분도 같이 앉아 밥을 먹지 못하고, 그 신체가 버스에 올라타는 잠깐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못하고, 그 신체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를 짓는 일에 반대한다면 그 자체로 혐오이며 다른 해명이 필요하지 않다. p.267

 

몸을 욕망해야 한다. 종교나 도덕, 정치가 뭐라고 하든 너의 '신체'와 함께하고 싶다는 선언이야말로 타인을 향한 욕망이고, 곧 사랑이다. p.267

 

디보티(devotee,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성적으로sexually 끌리는 사람들을 지칭)들의 문제는 신체에 대한 욕망에서 그 사람의 개별적 존재에 대한 사랑으로 나아가지 않고, 결국 '예외적으로 장애인을 사랑해주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그친다는 것이다. 이들은 타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결핍 있는 타자를 사랑하는 자기자신'에게 도취된다. p.272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고통을 피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람과 자신의 이별을(혹은 처음부터 아예 만나지 않은 것으로 삶을 되돌리는 일을) 감수하고, 상대방에 대한 죄책감조차 감당할 것이다. 아이를 사랑한다는 말과 그 아이가 '잘못된 채로' 태어나 역경을 겪을 바에야 차랄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은, 그래서 모두 진실일 수 있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역경을 돌파하며 장애를 수용하고, 고유하고 특별한 존재로 성장하기보다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더라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무난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p.293~294

 

장애를 가진 내가 잘못된 삶이 아니라는 사실, 실격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쓴 우리는 바로 그 장애를 가진 자신을 보듬고 돌보는 일에, 사랑하는 일에 종종 실패한다.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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