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김하나, 황선우 | 위즈덤하우스 | 2019


여전히 나는 혼자 먹는 밥이 맛있고 혼자 하는 여행의 간편한 기동력을 사랑한다. 그런 한편으로 또 믿게 되었다. 혼자 하는 모든 일은 기억이지만 같이 할 때는 추억이 된다는 이야기를. 감탄도 투덜거림도, 내적 독백으로 삼킬 만큼 삼켜본 뒤에는 입 밖에 내서 확인하고 싶어진다. p.18


지금은 홀가분해진 편이지만, 결혼하지 않은 채로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 먹어가는 일에 대해 나도 언제나 편안했던 건 아니다. 30대 중후반에는 꽤 초조함도 느꼈던 것 같은데, 이런 불안은 내 상황이나 내면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비롯한 편이었다. 통상적인 '결혼 적령기'를 넘어가는 여자는 스스로가 평정심을 유지하며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어도, 잔잔한 물에다 괜히 돌 던지는 모양새로 주변에서들 툭툭 건드리지 못해 안달이다. p.79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내가 불안하고 초조했던 건 결혼을 못 해서라기보다 '결혼 못 한 너에게 문제가 있어' '이대로 결혼 안 하고 지내면 너에게 큰 문제가 생길 거야'라고 불안과 초조를 부추기고 겁을 줬던 사람들 때문이라는 걸. 오지라퍼들이 아무리 깎아내린다 해도 나는 내가 하자가 있는 물건도, 까탈스럽고 분수를 모르는 사람도 아니라는 걸 안다. p.82


많은 사람들이 싱글로 사는 기간을 결혼을 준비하는 기간처럼 생각한다. 결혼을 점점 늦게 하는 추세인 요즘은 그 기간이 아주 길어져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그 기간을 '진짜 인생'의 서막처럼 여긴다면 긴 기간 동안 인생을 유예하며 사는 셈이 된다. p.107


사람은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지만 자신의 세계에 누군가를 들이기로 결정한 이상은, 서로의 감정과 안녕을 살피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계속해서 싸우고, 곧 화해하고 다시 싸운다. 반복해서 용서했다가 또 실망하지만 여전히 큰 기대를 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준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지는 교전 상태가, 전혀 싸우지 않을 때의 허약한 평화보다 훨씬 건강함을 나는 안다. p.115


동거인의 상사였던 <W Korea> 이혜주 편집장님이 결혼 생활에 대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둘만 같이 살아도 단체 생활이다." 동거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서로 라이프 스타일이 맞느냐 안 맞느냐보다, 공동 생활을 위해 노력할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을 것 같다. 그래야 갈등이 생겨도 봉합할 수 있다. p.119


혼자를 잘 챙기는 삶은 물론 바람직하고 존경스럽다. 그러나 역시 남에게 해주는 기쁨을 누리는 삶이 더 재미있고 의욕적인 것 같다. p.162


일본의 소설가 와타나베 준이치는 <둔감력>이라는 책을 쓴 적이 있다. 둔감력이란 모든 상황 앞에 너무 예민하게 굴지 않고 그냥 넘겨버릴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말이다. 내 생각엔 같이 사는 사람은 둔감력이 강한 사람이 좋은 것 같다. p.180


살면서 쌓이는 스트레스와 긴장, 걱정을 해소시켜주는 건 대단한 뭔가가 아니라 사소한 장난, 시시콜콜한 농담,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워너원의 노래 <갖고 싶어>에는 "매일 하루의 끝에 시답지 않은 얘길 하고 싶은데" 하는 가사가 나온다. 누구나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만 나누는 사이가 아니라 쓸모없고 시시한 말을 서로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를 한 사람쯤은 갖고 싶은 것이다. p.241


누군가와 같이 살게 되면서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타인이 강력한 주의 환기 요인이라는 사실이다. 지나치게 골똘해지거나 불안에 잠식당할 확률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과일 깎아 먹으며 나누는 몇 마디 얘기로도 어떤 울적함이나 불안은 나도 모르게 털어버릴 수 있고, 함께 살면 그 현상이 수시로 일어나 부정적 감정에 사로잡힐 겨를이 없어지기도 한다. 집 안 어디엔가 누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얻게 되는 마음의 평화 같은 것도 있다. 아니, 꼭 집 안에 있을 필요도 없다. 누군가 집으로 항상 돌아온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다.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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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작가님의 삶이 너무나 부럽다가도 여자 둘이 몇 번 살아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기회가 닿더라도 함께 산다는 결정을 선뜻 내리진 못할 것 같다. 두 작가님도  팟캐스트에서 30대 초반의 자신이었다면 두 달도 같이 못 살았을 거라는 말을 하셨으니 몇 년 후의 나는 좀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와 함께 살면서 얻는 안정감에 대해선 깊이 공감했다. 혼자 일하는 직업을 가졌다 보니 혼자 살기까지 하면 때때로 불안에 잠식당하다 못해 땅속으로 꺼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 누군가와 함께 살면서 서로의 감정과 안녕을 살피며, 적당히 민폐도 받아 주고 민폐를 끼치기도 하며 살면 꽤 힘이 되지 않을까. 꼭 여자 둘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와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면 읽어봄직한 책이다.


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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