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의 시대

훈의 시대 | 김민섭 | 와이즈베리 | 2018


언어는 한 사람의 몸을 만들어낸다. 먹는 것뿐 아니라, 일상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두고 쌓인 언어들 역시 그 개인의 몸이 형성되는 데 기여한다. 그가 받아들인 훈이 결국 그가 주체로서 존재하는가 아니면 좀비나 대리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는가를 결정짓는 것이다. p.32


여고의 경우는 어느 학교에나 '여자고등학교'라는 명칭이 함께하지만 남고는 '고등학교'로 불리는 것을 짚어두고 싶다. 우리 사회는 백여 년 동안 여기에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공부라는 행위와 학교라는 공간이 모두 애초에 남성을 위한 것이었음을 모두가 몸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 이후의 세대들도 그게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p.45


'남성이 군 복무라는 희생을 도맡고 있으니까 어디에서든 주체가 되어야 하고 여성은 주변부로 밀려나도 괜찮다'는 논리는 많은 남성들의 몸에 새겨져 있는 듯하다. 그러나 군 복무가 그러한 당위성을 부여하느냐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그러한 욕망이 학교에서부터 이처럼 구체화되고 있는 데는 문제가 있다. p.46~47


우리는 여학생과 남학생이 각각 어떠한 훈을 노래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시대에 맞지 않는 단어들을 이제는 폐기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각각에 대한 호칭을 성역할을 함의하지 않는 새로운 것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 여학생을 여성이나 어머니가 아닌 사람으로서 견인해 내야 한다. 이것은 한 존재의 몸을 본래대로 되돌리는 일이다. p.59


한 시대의 언어는 그 시대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몸보다 뒤처져서는 안 된다. 훈은 개인보다 후행하면서 그들을 퇴보시키기보다는 선행하며 변화를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학교라는 현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p.65


사실 많은 경우에 '을'을 막아서는 것은 갑이라기보다는, '갑'을 위한 대리전쟁을 수행하는 을들이다. 개인이 자신을 둘러싼 언어를 전복하는 일은 과연 가능할까. 제도와 문화에 작은 균열이라도 내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나는 자신이 없어졌다. p.90


책꽂이는 그 공간을 점유한 사람이 내재화한 '훈'이다. 사실 책꽂이처럼 언어를 전시해 둘 수 있는 공간도 별로 없다. 이제는 가훈이라든가 글귀 같은 것을 굳이 액자에 넣어 걸어두지 않는다. 그 공간의 주인이 선택한 언어라는 것은 이제 거의 유일하게 그의 책이 꽂힌 곳에 존재한다. p.225~226


그는 나에게 "작가님, 사람들이 저를 왜 도와준 걸까요? 작가님은 저를 왜 도와주셨나요?" 하고 물었다. 그에게 멋진 대답을 하고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당신이 잘되면 좋겠다고, 모두가 생각했을 거예요." 하고 답했다. p.239


새로운 시대의 개막은 낡은 언어들을 청산하는 데서부터 비로소 시작된다.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언어들에 어떠한 욕망들이 뒤섞여 있는지를 직시하고 버릴 것들을 과감히 버려나가야 한다. p.246


-

'참된 일꾼, 착한 딸, 어진 어머니'란 교훈도 시대착오적이지만 '겨레의 밭'이라는 표현은 참 기괴하게 느껴졌다.

토트*

덕업일치를 꿈꾸며 살아요

    이미지 맵

    冊 - 밑줄 다른 글

    댓글 0

    *

    *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