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 정영목 | 문학동네 | 2018


지금은 출발부터 번역을 업으로 지향하는 사람들이 있죠. 새로운 세대를 보면 내게는 애초에 없는 자세가 있구나 생각합니다. 제가 번역은 첫사랑 같은 느낌이 전혀 없고 어쩌다보니 같이 살고 있는 상대에 가까우니까요. (웃음) p.21


물론 언어에는 끈적한 속성이 있고 해당 사회에서 살아보지 않으면 터득하지 못하는 요소가 있어요. 그러나 영어든 한국어든 어떤 언어를 잘한다는 것은 일정한 선을 넘으면 모두 사고의 문제, 인간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말귀를 잘 알아듣는 게 핵심이라고 본다면 영어를 잘하는 것과 한국어를 잘하는 것이 같은 의미일 수 있죠. p.35~36


여러 설이 있지만 모국어가 도착어(번역문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맞는 것 같아요. 저는 번역이 아트(art, 예술)인지는 모르겠지만 크래프트(craft, 장인의 기술)는 되는 것 같아요. 즉, 결과로 나오는 언어를 세공해야 한다는 뜻인데, 세공은 모국어가 아니면 힘들 것 같아요. p.38


번역은 기본적으로 타자를 상대하는 행위이며, 그렇기 때문에 번역에는 번역가가 한 인간으로서 타자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이것이 번역 자체에서는 번역을 하는 방식, 예를 들어 직역적 경향이나 의역적 경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번역을 하는 방식에 변화가 오려면 상당히 깊은 수준에서 한 개인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p.77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번역이 좀 마음에 안 들면 '발 번역'이라고 비난을 하곤 했는데, 요즘에는 '구글 번역기로 돌렸다'는 말이 자주 들리는 듯하다. 이 표현을 들을 때마다 한편으로는 뜨끔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아직은 인간의 번역이 기계번역보다는 낫다는 것을 인정하는구나 싶어 안심이 되곤 한다. 그러나 방금 내가 '아직은'이라고 했는데, 바로 이 말 속에 언젠가는 기계번역이 인간번역을 대체할 것이라는 공포와 불안이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p.124


어떤 면에서 번역가에게 가장 어려운 과제는 외국어를 잘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외국어를 나의 한국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한국어로 구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p.147


사실 두 언어가 의미하는 바가 같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므로 같은 면은 보존하고 다른 면은 바꾸어준다는 것이 번역의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 되는 발상이기도 하다. 달리 표현하자면 번역을 가능하게 하는 발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두 언어가 같지 않다면 번역은 불가능할 것이고, 두 언어가 다르지 않다면 번역은 불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언어가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점이야말로 번역이 존재하는 근거라고 말할 수도 있다. p.152


외국어에 능숙한 사람도 외국문학을 원어로 읽지 않고 번역으로 읽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외국어를 잘하면 원서로 읽지 뭐하러 번역서를 읽느냐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혼자, 때로는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해보는 번역 작업에서 인간적 즐거움을 느끼듯이, 전문가가 공을 들여 해놓은 번역 자체에서도 두 언어가 뒤엉키고 새로운 가능성들이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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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되자마자 사서 거의 다 읽은 책인데, 마지막 한 꼭지를 안 읽어서 몇 달 만에 완독.


나는 지금 하는 영상이나 대본 쪽 번역이 적성에도 맞고 타이트한 마감 일정도 쪼는 느낌이 있어 좋은데, 책 번역의 부러운 지점이 딱 한 가지 있다. 번역을 마치고 난 후 처음부터 다시 보며 수정할 수 있다는 것. 대본은 거의 한 회씩 납품하는 경우가 많고, 영상도 마지막회를 번역할 때쯤이면 이미 첫방이 나간 후가 많아서 고치고 싶어고 고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n회차 복습 중이라는 글 볼 때마다 쫄보가 되고 만다. 제발 못 보고 지나가게 해 주세요-

토트*

덕업일치를 꿈꾸며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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