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마이너스

디 마이너스 | 손아람 | 자음과 모음 | 2014


너희가 만들고자 꿈꿨던 세상에서 살게 되기를

외로움. 내가 가진 건 단어였다. 감정이 아니었다. 적어도 외롭지 않은 상태를 아는 사람만이 외로움을 말할 수 있다. p.82~83


그게 바로 권력의 문제였다. 세상의 모든 지점에 무차별적으로 작용한다는 것. 권력은 혼자 높지 않고 다른 곳을 낮게 패어낸다. p.90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우리 모두가 살아남으려면 누군가는 보트에서 뛰어내려야 하지 않겠냐고. 제가 의아한 건, 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장롱에 침대까지 챙겨 들고 보트에 탔느냐는 것입니다!" p.154


우리 시대에는 자백을 받기 위해 피신문자를 고통으로 미쳐버리게 만들 필요가 없다. 그런 것은 선과 악이 상대적으로 선명하게 갈리던 때의 구식 전략이다. 새로운 고문은 피신문자에게 그저 세계의 어둡고 흉측한 그늘을 보여준다. 세계 전체가 이미 비쳐버렸다는 것을. 피신문자는 양심적으로 정신분열을 앓거나 양심을 팔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야 할 기로에 내몰린다.

우리 시대 신문관들이 피신문자에게 원하고 또 얻어낸 것은 자백이 아니었다. 자폐였다. p.196


인간은 불행이 따르면 믿을 수 없어 하지만, 불행이 닥치지 않는다고 의아함을 느끼지는 않는 법이다. 그리고 불행은 인간이 완전히 방심했을 때, 즉 몸과 마음의 긴장을 홀가분하게 내려놓았을 때, 무장강도처럼 불쑥 찾아와 최악의 피해를 남긴다. 그래서 그것이 불행이라고 불린다. p.227


마음속에만 꾹 담아둔 말. 그런 말은 검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만이 유일하게 입으로 하기 어려운 말이고, 그것만이 유일하게 입으로 할 가치가 있는 말이라고 느꼈다. 마음속에만 담아두면 검증할 방법이 없어서였다. p.254


권력을 손에 쥔 통치자들이 가슴에 아로새겨야 할 잠언을 여기 내린다: 살아서 잘하라. 너희의 삶은 찰나일지라도, 너희의 죽음은 영원하다. 너희의 가장 부끄러운 배신을 기억하는 자들의 냉랭한 침묵은 너희의 죽음으로 깨어질 것이니. 봄처럼 되찾은 말로 너희의 위대한 봉분이 땅밑으로 닳아 꺼질 때까지 오만 잡꽃을 다 피우리라. p.303


가까워지기는 어렵지만 멀어질 때는 가속이 붙는다. p.316


"너희가 무엇과 싸우는지 정확히 말해주마. 너희는 세상과 싸우는 게 아냐. 세상이란 단어에는 아무 뜻도 없어. 너희는 선배들과 싸우고 있다. 너만 할 때는 딱 너랑 똑같은 눈빛을 가졌던 놈들. 그리고 언젠가 네 후배들이 너랑 똑같은 눈을 하고 너의 미래와 싸우게 될 거야. 끝이 없는 윤회 같은 거지." p.407


"나는 누군가의 반대편에 서는 것으로 내 위치를 결정하진 않을래." p.413


언제나 양심이 문제다. 아, 우리가 좀 더 뻔뻔해질 수만 있다면! p.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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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 후일담 소설. 팟캐스트에서 지나가는 말로 잠깐 나온 소개를 듣고 고른 책이다.


저분들은 대체 왜 아직도 학교를 다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98~99학번 선배와 같이 수업을 들으면서

베이이징에서 이미 박사 학위까지 받고 돌아오신 97학번 강사님한테 수업을 받던 나로서는

학생운동이라는 게 먼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졌는데, 읽어 보니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니라 놀라웠다.

토트*

덕업일치를 꿈꾸며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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