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의 식탁

네 이웃의 식탁 | 구병모 | 민음사 | 2018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건 웬만한 소음은 배경음악으로, 어수선한 광경은 손 닿지 않는 액자 속 풍경으로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p.10


은오는 남들 앞에서 요진을 칭찬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을 낮추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는데, 그것이 배려에서 나오는 말이라도 요진은 가끔 고통스러울 때가 있었다. 그가 자신을 깎아내려서 상대적인 위치가 높아지는 것도 요진은 원치 않았고, 그런 방법으로 진짜 돋보이거나 빛나는 것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칭찬으로 들리지가 않았다. p.13


두 아이를 키운 경험에 비추어, 엄마란 자신이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더라도 죄송합니다와 고맙습니다를 입에 달고 살아야 마땅한 존재였다. p.28


평생을 정부 소속 기관의 근면 성실 투명한 월급 생활자로 지낸 남편만 보고 살았던 시어머니는 프리랜서의 정의를 '언제라도 내킬 때 일할 수 있는 사람'이자 심지어는 납품 즉시 입금이 꼬박꼬박 이루어지는 1인 평생직장으로 알아서 둘이 버는데도 늘 돈에 쪼들리는 아들 부부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후자는 몇 년에 걸쳐 효내가 몸소 사실을 바로잡아 보였지만 전자는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러자면 녹록지 않은 사회 구조와 급변한 문화 환경부터 개괄해야 했다. p.37~38


핵심은 시간을 보내는 데 있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면서 체세포의 수를 착실히 불리는 거야말로 어린이의 일이었다. 그 어린이를 바라보는 어른의 일은, 주로 시간을 견디는 데 있었다. 시간을 견디어서 흘려보내고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일. 그곳에 펼쳐진 백면에 어린이가 또다시 새로운 형태 모를 선을 긋고 예기치 못한 색을 칠하도록 독려하기. 그러는 동안 자신의 존재는 날마다 조금씩 밑그림으로 위치 지어지고 끝내는 지우개로 지워지더라도. p.67


아이를 낳아 봐야 진짜 어른이 돼. 그 전에는 결혼하고 둘이 잘 살아 봤자 소꿉장난이고. 처음 요진은 그 말들이 저마다 스스로를 향한 격려인 줄 알았다. 출산과 함께 인생의 궤도가 틀어졌고 개성이나 욕망을 삶의 가장자리로 밀어 두는 데 익숙해졌지만 적어도 세상에 값진 생명을 내놓은 생산적인 인간이라는 성취감을 느끼고자 이를 악무는 위안의 제스처인 줄 알았다. 그러나 실상 그 말들은 자기 변호에 가까웠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수치심을 모르는 인간, 모르지 않는다면 그것을 엉성한 뚜껑으로 덮어 두거나 나일론사로 봉합하는 인간이 된다는 뜻이었다. p.82


무언가를 씻어서 찢거나 토막내고 물에 끓이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시간과 비용과... 무엇보다도 건강하고 넉넉한 육체와 정신을 필요로 하는 일인지. p.89


정확하게는 피곤한 여자로,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예민한 이웃으로 간주되기 싫었다. 좋은 게 좋은 줄 알며, 사소한 농담에 호응해 주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회인이 되는 게 바람직했다. p.119


자신의 마음은 어딘가 용납되지 않는데 이미 형성된 분위기가 그 용납되지 않음을 용납하지 않을 때, 이럴 때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일은 화제 전환 정도였다. p.127


-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대책으로 만들어진 꿈미래실험공동주택에서 벌어지는 네 이웃의 이야기.

정부에서 추진하는 이런 '실험'은 대체로 성공할 리가 만무하다.


공동육아라니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는데, 이건 뭐 너무나 현실적인 스릴러잖아!

실제로 육아를 하는 친구들이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 궁금하다.

토트*

덕업일치를 꿈꾸며 살아요

    이미지 맵

    冊 - 밑줄 다른 글

    댓글 0

    *

    *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