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 이유진 | 메디치 | 2018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지 싸움을 잘하지 못한 죄가 아니다. - 항우

天亡我也,非战之罪也。


항적(항우)에게는 천하를 가질 재능이 있었으나 천하를 가질 헤아림이 없었다. - 소순

项籍有取天下之才,而无取天下之虑。


두려워할 것은 오로지 백성뿐입니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습니다. - 위징

可畏惟人,载舟覆舟。(이세민의 피휘 때문에 民 대신 人을 씀)


"서른에 명경과 합격은 늦은 셈이고 쉰에 진사과 합격은 이른 셈" - 당나라 속담

三十老明经,五十少进士。


공평함은 명철함을 낳고, 치우침은 우매함을 낳는다. - <순자>

公生明,偏生暗。


풍족한 대로 부족한 대로 즐겁게 살지니, 입 벌려 웃지 않으면 그야말로 바보. - 백거이 <술을 마주하고(對酒)>

随富随贫且欢乐,不开口笑是痴人。 


군자는 편안한 위치에 거하면서 천명을 기다리고, 소인은 위험한 짓을 하면서 요행을 바란다. - <중용>

君子居易以侯命,小人行险以徼幸。


송나라 학자 범준은 항우가 범증을 얻었으나 쓰지 못했고 진평을 얻었으나 쓰지 못했으며 하신을 얻었으나 쓰지 못했고 결국 다들 원망하며 떠나가게 했다며, 그가 망하면서 어찌 하늘을 원망했느냐고 비판했다. p.66

若籍则无能有是,得范增不能用,得陈平不能用,得韩信不能用,皆使之怨偾弃去,徒以匹夫小勇,欲决雄雌于挑战间,至力蹙势穷,犹将驰杀一二汉将,以见枝能,此楚所以失天下也。然则籍之亡也,又胡望乎天哉?


당태종은 "구리를 거울로 삼으면 의관을 바로잡을 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천하의 흥망을 알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득실을 밝힐 수 있다"라면서 위징의 죽음을 몹시 슬퍼했다.  p.125

以铜为镜,可以正衣冠;以古为镜,可以知兴替;以人为镜,可以明得失。


장락문에서 '장락'은 명나라가 오래도록 즐겁기를 축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명나라 말에 이자성이 시안으로 쳐들어왔을 때 바로 이 성문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때 그가 성문에 걸린 '장락문'이라는 편액을 보고서 "황제가 오래도록 즐거우려면 백성은 오래도록 고통스러워야 하겠지"라고 말하자 곁에 있던 부하가 즉시 장락문의 성루를 불태웠다고 한다. p.202

若让皇帝长乐,百姓就要长苦了。


중국에서 해방이라는 용어는 1945년 8월부터 1950년 6월까지 벌어진 공산당과 국민당의 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한 일을 가리킨다. p.206


낙양은 낙하의 양陽, 즉 북쪽이라는 의미다. 서울의 옛 이름 한양漢陽이 한강 북쪽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양'이 강의 북쪽을 가리킨다는 걸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산'의 경우에는 정반대다. 즉 산에서 유래한 지명은 산의 남쪽에 위치하면 '양'이 붙고 북쪽에 위치하면 '음'이 붙는다. 중국의 오악 가운데 서악에 해당하는 화산의 북쪽에 위치한 화음이 그 예다. p.211


관우의 머리가 묻힌 곳이 바로 뤄양의 관림이다. 중국 역사상 무덤에 '림林'이라는 말이 적용된 사람은 공자와 관우 두 명뿐이다. 공자가 묻힌 공림과 관우가 묻힌 관림, 그들의 역사적 비중이 무덤 호칭에 반영된 것이다. 일반 백성의 무덤은 분墳, 왕후장상의 무덤은 총, 제왕의 무덤은 능이라 한다. p.232


<북창자과록>에는 이런 일이 기록되어 있다. 어느 날 밤 떠들썩한 음악이 들려오자 인종이 궁인에게 물었다. "대체 어디서 들려오는 음악이냐" "민간의 주루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폐하, 바깥 민간은 궁중의 적막함과 달리 이토록 즐겁사옵니다." "너는 아느냐? 궁중이 적막하기에 바깥 백성이 이토록 즐거울 수 있는 게다. 만약 궁중이 이토록 즐겁다면 바깥의 백성들은 적막할 수밖에 없느니라." p.305

有一日深夜,宋仁宗“在宫中闻丝竹歌笑之声”,便问道:“此何处作乐?” 宫人说:“此民间酒楼作乐。” 相比之民间酒楼的喧闹,皇宫的夜晚显得冷冷清清,所以宫人都有些羡慕起市井生活来:“官家(指皇帝)且听,外间如此快活,都不似我宫中如此冷冷落落也。” 仁宗说道:“汝知否?因我如此冷落,故得渠如此快活。我若为渠,渠便冷落矣。”


흥미롭게도 나이를 가리키는 단어 중 '다수茶壽'라는 표현이 있다. 108세를 가리키는 말이다. '茶'를 분해하여 더하면, '十(10)+十(10)+八十(80)+八(8)=108'이 되는 데서 유래했다. p.357


'차'는 인생의 여덟 가지 우아함 가운데 하나로도 꼽힌다. 인생의 여덟 가지 우아함이란 거문고, 바둑, 서예, 그림, 시, 술, 꽃, 차다. p.361


호경여당의 대청에는 '진불이가真不二價'라고 적힌 편액이 걸려 있다. "진짜 물건이니 두 가지 가격(에누리)은 없다." 품질을 보증하되 절대 에누리는 없다는 게 호경여당의 경영 원칙이었다. p.369


"우리는 자유를 사랑하니 자유라는 술 한 잔을 권한다"(면여권가勉女權歌)고 외쳤던 추근은 여성해방과 반청 혁명에 기꺼이 몸을 던졌다. p.384

吾辈爱自由,勉励自由一杯酒。


고대 중국에서는 천제가 하늘의 중앙 자미성(북극성)에 거주한다고 여겼다. 황제는 하늘의 아들인 천자를 자처했으므로 천자가 거주하는 황궁을 하늘의 자미성에 대응하여 자궁紫宫이라고 불렀다. 황제가 거주하는 곳은 경계가 삼엄하고 백성이 접근할 수 없는 절대적인 금역이었으므로 금궁禁宮이라고도 했다. 여기서 '자금성'이라는 명칭이 유래했다. p.484


자금성의 주요 건출물은 기본적으로 '전조후침前朝後寢'의 구조를 따른다. 즉 황제의 공적 업무 공간인 '외조外朝'가 앞쪽에 자리하고, 사적 공간인 '내정內廷'이 뒤쪽에 자리한다.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은 외조에 해당하고 건청궁, 교태전, 곤녕궁은 내정에 해당한다. p.486


'당신은 오문을 통해 들어온 황후.' 젊은 나이에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게 된 청나라 동치제가 효철의황후에게 남긴 말인데, 이는 동치제가 어머니 서태후를 의식한 발언이다. 어린 나이에 제위에 오른 동치제는 늘 서태후의 간섭을 받았다. 생모인 서태후보다 동태후를 더 따랐던 그는 서태후가 추천한 여인이 아닌 동태후가 추천한 여인을 자신의 황후로 선택했다. 이 때문에 서태후는 효철의황후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서태후의 등살에 고생할 자기 아내에게 남긴 '당신은 오문을 통해 들어온 황후'라는 말은 가장 큰 격려의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기세등등한 서태후도 오문을 통해 들어온 황후는 아니었다. p.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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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중국사' 느낌. 오랜만에 이런 역사책 읽으니까 재미있다.

신나서 인용된 구절 원문도 찾아봄ㅋㅋ

토트*

덕업일치를 꿈꾸며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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