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

어른이 되면 | 장혜영 | Woodstock | 2018


무언가를 똑바로 바라본다는 것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의미한다. p.33


혜정이라는 한 인간의 삶은 늘 혜정이를 돌보는 사람들의 삶보다 무게가 덜 나갔다. 혜정이를 돌보는 것이 힘든 일이라는 목소리에 가려 정작 혜정이의 힘듦은 감추어졌다. p.37


비장애인이 비장애인을 대하는 특별한 방법이 없듯이 장애인을 대하는 데에도 특별한 주의사항은 필요하지 않다. 혹여 실수를 하게 된다면 사과를 하면 된다. 물론 사과를 받아주는 것은 상대의 몫이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커뮤니케이션에 장애와 비장애는 중요한 차이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와 소통하고자 하는 열린 마음이다. p.93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자폐성장애와 지적장애를 묶어서 이르는 '발달장애'라는 단어는 이미 장애의 특성 자체를 긍정적으로 호명하려는 노력을 담고 있다. '정신지체'라는 단어와 견주어 보면 그 의미가 명확해진다. 정신이 '지체되었다'고 하는 말에는 이미 '지체되지 않은' 정신과의 비교가 담겨 있기에 아무리 적응의 노력을 거듭한다 해도 그것은 미성숙함과 불완전함의 낙인을 벗어날 길이 없다. 반면 발달장애라는 말은 인간 뇌의 발달이 복잡하고 섬세하며 끊임없는 과정임을 상기시킨다. p.117


내 한 몸도 살기 힘든 세상이기에 남을 돌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내 한 몸도 건사하기 힘든 세상이 된 것이다. 나만이 나를 돌보는 세상은 제아무리 잘난 개인이라도 버거울 수밖에 없다. p.150


우리 엄마는 지금의 내 나이쯤에 혜정이를 낳았다. 눈을 감고 내가 그때의 엄마가 되었다는 상상을 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막막함이 가슴 저편에서 밀려온다. 사람들은 장애가 있는 혜정이가 세상에서 잘 살아가도록 도와주기는커녕 장애인 자식을 낳은 것을 엄마의 죄라고 생각했다. 그 속에서 엄마는 얼마나 수도 없는 절망을 맛보았을까. p.151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지 않는 세상에 익숙한 많은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친절한 차별주의자가 된다. 그들은 가끔 만나는 장애인들에게 마음을 다해 친절을 베풀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대개 그 친절은 과장되고 부자연스럽다. 친절을 위한 친절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장애인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란다. 하지만 정작 왜 비장애인보다 장애인에게 특별히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지 이유를 물으면 말문이 막힌다. '불쌍해서'라고 대답하면 안 된다는 것은 눈치로 안다. p.164


장애인을 대할 때 필요한 것은 배려와 호의, 친절한 태도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이다. 많은 사람들이 비장애인을 대할 때는 당연하게 지키는 매너를 장애인 앞에 서면 지키지 않는다. p.164


보호의 이름으로 약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은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에게 능동적인 삶을 살아갈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다. 시설은 결코 선택이 될 수 없다. p.215

토트*

덕업일치를 꿈꾸며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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