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위한 역사학 강의

내일을 위한 역사학 강의 | 김기봉 | 문학과 지성사 | 2018


어떤 역사가를 정확하다는 이유로 칭찬하는 것은 어떤 건축가를 잘 말린 목재나 적절하게 혼합된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집을 짓는다는 이유로 칭찬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그의 작업의 필요조건이지만 그의 본질적인 기능은 아니다. p.46


모든 역사는 정치적이지만, 정치가 역사를 지배하면 궁극적으로 학문의 자유는 말살된다. p.55


역사가의 해석이 주도하는 대화를 통해서는 과거는 스스로 말하지 못하고 역사가의 물음에만 답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딜레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현재가 아닌 과거가 주도하는 대화, 곧 역사가는 말하기보다는 듣는다는 자세로 과거와의 만남을 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말할 때는 자기가 아는 것만을 말하지만, 들을 때는 자기가 모르는 것을 배울 수 있기에 역사가는 경청하는 자세로 과거와의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p.59


역사는 사라진 것에 대한 기록이다. 사라진다는 것은 무無이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역사란 무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다. 과거로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을 미리 아는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다. 그 자신의 삶이 의미 있다는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의미 있었음을 입증해야 했고, 이런 필요성 때문에 역사라는 서사를 만들어냈다. p.130


흔히 세상을 보는 방식을 '새의 시각bird's eye view'과 '벌레의 시각worm's eye view'으로 나눈다. 전자가 높은 하늘에서 멀리 내려다보는 방식이라면, 후자는 땅에서 기면서 가까이 자세하게 보는 태도를 지칭한다. 이 두 관점이 조화를 이룰 때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는 가장 이상적인 관찰을 할 수 있다. p.145


문제는 이 같은 미시사의 일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다. 이미 일어난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과거에 실현 가능성이 있었던 '지나간 미래'다. 미시사는 '현실의 역사'를 넘어서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가능성의 역사'까지도 발굴해냄으로써, 지금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지나간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p.159


이기적 집단은 이타적 집단을 이길 수 없다. 개체로서 인류는 어떤 동물보다 이기적이지만, 그들이 모여 국가와 민족과 같은 이타적 정치 공동체를 형성하면 그 상상의 공동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한다. 이런 기적이 일어나는 이유는, 인간이 신화, 종교, 역사와 같은 허구 서사를 통해 자기 정체성과 존재 의미를 규정하는 '폴리스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p.248


"인간은 아버지보다 자기 시대를 더 많이 닮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학교의 탄생과 함께 아버지가 했던 교육의 상당 부분이 대체됐다면, 디지털 문명의 세례를 받고 자라난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 세대는 부모로부터 배울 것이 별로 없는 '고아 세대'다. 인간이 사는 것은 과거가 아닌 미래다. 물론 과거 없는 미래는 없지만, 이제는 과거로서 미래를 살 수 없다는 것이 인류가 당면한 큰 문제다.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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