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정상가족

이상한 정상가족 | 김희경 | 동아시아 | 2017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결혼제도 안에서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을 이상적 가족의 형태로 간주하는 사회 및 문화적 구조와 사고방식을 말한다. 바깥으로는 이를 벗어난 가족 형태를 '비정상'이라 간주하며 차별하고, 안으로는 가부장적 위계가 가족을 지배한다. 정상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가족이 억압과 차별의 공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p.10


평소 체벌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극도의 양육 스트레스를 겪을 때 이 스트레스가 촉매제가 되어 학대로 치닫게 된다. 반면 체벌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양육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상황에서도 학대로 치닫는 경우가 없었다. 도구를 갖고 엉덩이를 자주 때리는 부모들이 그렇지 않은 부모에 비해 학대를 할 가능성이 9배나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p.27


한국의 헌법에 해당하는 <독일기본법> 제6조 제2항은 "자녀의 보호와 교양은 자연적 권리이자 일차적으로 부모에게 부과되는 의무이다. 그의 행사에 관하여는 국가 공동체가 감독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p.57


앞의 유서에서 한 엄마가 썼듯 "내가 죽고 나면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라는 의식은 꽤나 만연하다. 내가 자랄 때 삶이 힘든 동네 아주머니들의 푸념에 섞여 나와 자주 듣던 말이기도 하다. 그만큼 다른 사람들이, 사회가 남겨진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인간 대접을 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 근대화의 전 과정에 걸쳐 이는 불행하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p.89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뒤 자살하는 참극을 자녀의 인권유린과 폭력, 범죄의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고 '동반자살'이라고 부르며 동정하는 시선에는 가족주의가 진하게 배어 있다. 살해의 비윤리성보다는 가족이 운명공동체이므로 부모가 끝까지 책임을 지기 위해 자식의 목숨을 처분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전제를 갖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가족주의는 이처럼 부모의 무한책임 정서 위에 구축되어 있다. 여기에 자녀의 독립적 인격과 개별성은 없다. p.91~92


한국의 가족주의는 소위 '정상가족'인 가부장적 가족만 인정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다. 법적 혼인절차가 수반되지 않은 임신과 출산, 양육에 대한 사회적 보호와 인정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결혼=출산'의 등식이 지나치게 확고한 탓에 제도의 바깥에서 출산함으로써 가족의 순수함을 훼손했다고 여겨지는 미혼모와 그 자녀들은 제도적, 사회적 차별에 시달린다. p.115


초저출산을 경험한 많은 국가들이 종전에 가족이 책임지는 복지를 이제는 사회투자라는 관점으로 바꿔가고 있으며, 이를 위해 가족복지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책임 또한 강화되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미혼 임산부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미혼모의 양육과 취업이 가능하도록 하는 보육 지원 확대와 주거 문제의 지원, 미혼모에 대한 제도적, 사회적 차별 철폐 등 양육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p.127


1990년대의 개인화가 더 발전하지 못하고 가족주의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것은 우리 사회의 지층을 뒤흔든 IMF 경제위기의 영향이 크다. 국가 경제가 파탄 나면서 모두 불안해졌다. 개인의 자유로운 성장은커녕 가족이 뭉쳐 살아남거나 흩어져 죽거나 둘 중 하나였다. 추락은 공포가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명예퇴직이 증가하고 일자리가 불안정해지면서 기혼여성들도 생계전선에 나서고 청년들이 열악한 일자리를 전전하며 생계를 해결해야 했다. p.168


출산율이 회복된 나라들에는 혼외출산을 '정상가족'에 대한 도전이나 일탈로 간주하며 차별하는 배타성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p.231


아이들에게 가족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부모-자녀는 생애의 가장 일차적 관계다. 그러나 가족 안에서 부모의 친권이 아이의 인권을 침해했을 때, 이 경우에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이 부모의 권리보다 우월하고 정당하다. 이게 '아동 최선의 이익의 원칙'이자 약자의 편을 들어줘야 할 공공의 역할이다.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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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내가 태어나던 날, 엄마와 같은 병실을 쓰던 산모는 미혼모였다고 한다. 엄마는 출산 후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때, 그 미혼모는 아이를 홀트에 넘기고 자기 발로 병실을 걸어 나갔다고. 나와 같은 날 태어났다던 그 아이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해외 입양에 관한 문제를 접할 때마다, 얼굴도 모르지만 나와 생년월일이 같은 그 아이가 떠오른다.


02. 언제부턴가 '사랑의 매'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됐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확신을 가졌다. 요즘에도 가정에 회초리를 구비해 두는지 잘 모르겠다. 실사용용이든 위협(?)용이든 간에. 혹 아이를 키우게 되더라도 체벌만은 절대 하지 말리라 다시 한 번 다짐한다.


03. 지금까지는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정상가족'의 틀 안에 살았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이대로 쭉 산다면 20년 후쯤에는 '비혼 여성이 돌봄 노동을 수행하는 가정'의 구성원이 될 테고, 다시 독립을 하거나 혹은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한 '정상가족'의 범주에는 들어갈 수 없다. 나는 그냥 나인데, 어렵네.

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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