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마도

언젠가, 아마도 | 김연수 | 컬처크라퍼 | 2018


막상 간절하게 원하면 쉽게 구할 수 없다. 이건 오르골의 법칙이다. 이걸 뒤집으면 쉽게 구할 수 없다면 간절하게 원하게 된다. 이건 도루묵의 법칙이다. 그러고 보면 서울의 거리를 걷다가 마치 낯선 여행지처럼 느껴질 때가 몇 번 있었다. 나 혼자 하염없이 걷고 있을 때, 이별했을 때, 이제 다시는 누군가와 웃으며 그 거리를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돌이켜보면 바로 그때가 도루묵의 법칙이 작용했을 때였다.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이 도처에 널려 있는데도 간절히 원하지 않는 인생이란 어쩐지 낭비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p.27


자유는 남들이 바라보는 세계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한다. 더 많은 사람의 관점에서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때, 나는 더욱더 자유로워진다. 그런 점에서 나는 모든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그래서 세상에는 이토록 많은 책이 있는 게 아닐까? 원한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라도 될 수 있다. 이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 p.75


여행의 교훈은 내가 보는 세상이 이처럼 상대성의 원리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인지도 모른다. 빈민이 많은 저개발국을 여행하고 돌아오면, 미안하지만 한국에서 사는 게 참 행복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유럽 여행 뒤에 바라보는 한국은 전생에 나쁜 일을 하다가 죽은 이들이 오는 곳 같기도 하다. 당연히 한국은 천국도, 지옥도 아니다. 한국은 그저 한국이다. 여행자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두 지역을 한데 놓고 비교하는 어리석음을 피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그래야 여행이 가능하다.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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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산문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김연수 작가의 책이라니 안 읽을 수가 없다. 얼마 만에 나온 신작인지.


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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