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야기 13

01. 더위


1994년 여름이 기록적인 폭염을 기록했다는데, 사실 어릴 때라 기억은 잘 안 난다.

내가 경험한 최악의 무더위는 2007년 여름, 동생과 함께 갔던 시안 여행에서였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지방이라 그런지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더웠다.

그때만 해도 스마트폰이 없어서 여행책자를 보며 길을 찾아다녔는데,

분명 '도보 5분'이라고 되어 있는 거리도 막상 걸어가 보면 도보 10분은 족히 되기 일쑤여서

짜증지수가 팍팍 올라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7월 중순부터 기록적인 무더위라는 뉴스가 연일 나왔지만,

그 무렵엔 일이 너무 바빠 외출을 별로 안 하다 보니 별로 실감을 못했다.

그런데 며칠 전, 모처럼 평일 점심 약속이 있어서 나갔다가 폭염을 제대로 실감했다.

동생이 '요즘 날씨는 꼭 시안 날씨 같아'라고 해서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는.



02.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이 체력이라는 게 참 재미있어요. 어떤 날은 뭐 별로 힘든 것 같지도 않고 충분히 더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리가 후들거리고 묵직해서 앞으로 절대 안 나간다? 근데 어떤 날은 너무 숨차고 힘들고 당장 쓰러질 것 같은데 다리가 저절로 슥슥 움직여서 알아서 달리고 있어요. 이런 게 체력이에요. p.150


살다 보면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해서 미안한 경우도 있지만,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미안한 경우도 있다. 인생이 참 쉽지가 않다. p.219


어떤 새로운 세계 안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은 그게 그저 생각에서 그칠 뿐 실제로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일 때 그 안전한 거리감 속에서 마음 놓고 펼칠 수 있는 것이다. p.224


일 나가고 아이 돌보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 어떻게든 일상에 축구를 밀어 넣는 이 여정 자체가 어떻게든 골대 안으로 골을 밀어 넣어야 하는 하나의 축구 경기다. 기울어진 축구장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에게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라는 걸 잘 알기에 모두들 최대한 모두의 일상에 축구가 들어갈 수 있도록 패스를 몰아주고 공간을 터 주고 리듬을 맞춰 준다. 여기서 우리는 한 팀이다. p.270


팟캐스트 '삼천포 책방' 덕분에 읽게 된 책. 기대했던 만큼 빵빵 터져서 재미있게 읽었다.


나는 체육 과목이 '즐거운 생활'에 포함됐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늘 체육이 싫었다.

달리기는 언제나 꼴등이거나 꼴등에서 두 번째거나. 싫어서 못한 건지, 못해서 싫은 건지 아무튼 싫었다.

그런 나와는 달리 엄마는 의외로 근력도 있고 유연성도 있는 편이어서 오랫동안 단체 줄넘기 선수로 활동했고,

그 덕분에 지역 여자 축구팀에 가입하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다.

신나는 여자 축구 이야기를 읽으니

그때 엄마가 여자축구팀에 들어갔다면 엄마의 인생도 조금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03.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오빠 강민호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모욕을 당할까봐 모욕을 먼저 느끼며 모욕을 되돌려주는 삶에 대해서.

나는 그게 좀 서글프고, 부끄럽다. p.33


나는 아내의 흐트러진 앞머리를 보면서 잠깐 말을 아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마음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물리적이고 체력적인 일이었다. p.250


자네, 윤리를 책으로, 소설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책으로, 소설로, 함께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내가 보기엔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네.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이 우리가 소설이나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이라네. p.313



04. 허스토리



울 아버지가 매화꽃이 예쁘게 수놓아진 꽃신을 사오신기라.

그거를 내 손에 딱 쥐여 주면서 대를 이으려면은 머스마가 남아야 되지 않겠나, 이러면서

미안타, 미안타 하면서 막 우시는기라.

그래서 지는 괜찮아요, 우리 소 꼴을 못 베어 놓고 가서 죄송해요 아버지, 그랬어.

꼭 영화관에서 보고 싶었는데, 개봉관이 적고 시간대가 너무 안 맞아서 결국 굿다운로드로 봤다.

할머니들 사연이야 다 가슴 아팠지만, 이옥주 할머니 얘기가 특히 자꾸 생각나서 몇 번을 돌려 봤다.



05. 도둑맞은 가난


부자들이 가난을 탐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에 안 차 가난까지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 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

박완서, <도둑맞은 가난>

이 단편을 읽은 건 아니고, 트위터에서 인용된 문구만 봤다. 찾아보니 이북으로 나온 게 있어서 조만간 읽을 예정.

박원순 시장의 옥탑방 체험이 곱게 보이지 않는 건 사실이다.



06. 아쿠아리움


아쿠아리움에 간 게 몇 년 만이던가. 육아하는 친구들 인스타에서 자주 봤던 아쿠아리움.

그래서인지 아이가 없는 나를 포함, 내 친구들은 웬만해선 갈 생각조차 안 하는 아쿠아리움ㅋㅋ


상어를 보니까 노완동이 타고 놀던 어설픈 CG 상어가 떠올랐다.

몇 년 후에나 나올 다음 리메이크작에선 좀 그럴듯한 상어떼를 기대해도 될까.


사실 촉박한 마감 때문에 무거운 마음을 안고 갔는데, 오랜만에 가니까 시원하고 나름 재미있었다.



07. 먹은 기록


사촌동생이 다음 달에 미국으로 연수를 간대서 응원(?)해 줄 겸 따로 만났다.

근데 아직 출국 날짜조차 정해지지 않아서 전혀 실감 나지 않는다고(ㅋㅋ).

사촌동생은 마라를 처음 먹어 본다는데 아무래도 미국식 중식당이다 보니 향이 강하지 않아 초심자가 먹기에도 괜찮아 보였다.

물론 나는 마라탕집에서 먹는 마라탕이 훨씬 맛있었지만. 그래도 레몬크림새우는 정말 강추!


참 맛있지만 껍데기 까는 게 상상 이상으로 귀찮고,

껍데기를 까는 데 들어가는 정성에 비해 알맹이는 터무니없이 작아서 정말 날 잡고 먹으러 가는 음식인 마라룽샤.

그런데 그 껍데기를 대신 까 주는 곳이 있다니, 안 갈 수가 없쟈나!


우리가 주로 만나는 지역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지만, 남이 까 주는 가재를 먹겠다는 일념으로 결국 숙대입구까지 갔다.

남이 까 주는 가재는 멀리 간 보람이 느껴질 만큼 맛이 있었다.

가재만 먹고 버리기엔 마라국물이 너무 아까웠는데 사리를 넣으니 이게 또 환상. 더불어 마라 닭튀김도 맥주 안주로 그만이었다.



08. 앞으로 볼 중드


내가 요즘 얼마나 정신이 없었느냐 하면, 올여름 화제였던 <진혼>을 단 한 편도 못 봤다. 

화제작이라면 1~2회 정도는 꼭 챙겨 보는 나인데ㅠㅠ


모두가 열광하는 대작은 없어도 보고 싶은 드라마는 꽤 쌓였다.

8월에도 신작이 꽤 공개되겠지만, 일단 영상 풀린 것 기준으로 정리-


1006적방객 / 결애 둘 다 중간에 멈춘 후로 지금껏 중단 상태.


미자무강 이일동 신작. 일단 한두 회 보고 볼지 말지 결정 예정.


북경여자도감, 상해여자도감 북경여자도감을 3회 정도 봤을 때였나. 오랜만에 만난 친한 동생이 북경여자도감을 강추해서 신기했다.

스포라서 얘기 못하겠으니까 다음에 자기 만날 땐 꼭 다 보고 오라고 신신당부ㅋㅋㅋㅋ


연희공략 놀랍게도 지금껏 우정 드라마를 한 편도 안 봤다. 일부러 피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다들 욕하면서도 보는 게 우정 작품인지라 나도 한 번 시도해 볼까 한다.

이번엔 쨍한 색감이 아닌 데다 간만에 보는 청나라 사극이라 기대 중!


일천령일야 스토리는 전혀 모르지만 디리러바가 귀엽게 나오는 것 같아서 관심.


진혼 다들 재미있다니 뒷북으로 달려 보겠다(...)

토트*

덕업일치를 꿈꾸며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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