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본 영화

혼자서 본 영화 | 정희진 | 교양인 | 2018


나는 모든 중독자들을 이해한다. 중독의 차이는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중독인가(일, 공부...) 아닌가, 혹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p.10


여성 문제 전문가, 아니 '문제 여성' 진단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 땅의 남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조선 시대에 비하면 여자들 사는 게 많이 나아졌다'는 것이다. 인간(남자)의 삶이 중세에 비해 나아졌기 때문에 더는 투쟁하거나 진보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없다. 여성의 지위는 같은 시대, 같은 계급의 남성과 비교되지 않는다. 2010년대 여성의 지위는 2010년대 남성의 지위와 비교되지 않고 조선 시대 여성과 비교되며, 중산층 여성의 지위는 중산층 남성과 비교되지 않고 노동 계급 남성과 비교된다. p.65


생계 걱정 없이 혼자, 혼자 본 영화를, 혼자 생각하면서 가슴 뛰다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완벽한 인생이다. p.73


우리가 본 영화는 우리의 인생과 붙어 있다. 몸으로 영화를 본다. 영화의 내용은 감독의 '연출 의도'가 아니라 관객의 세계관에 달려 있다. 누구나 자기의 삶만큼 보는 것이다. p.97


피해자는 죄가 없다는 이 간단한 윤리, 아니 상식이 우리 사회에는 없다. 피해를 효소하는 이들에게 흔히 사회가 보이는 반응은 "당신이 그때 어떻게 했습니까?(평소에 네가 어떻게 행동했길래, 그런 일에 휘말리다니, 그 사람이랑 어떤 관계인데...)"이다. p.115


'선'의 힘으로 '악'을 이기려 할 때, 인간은 부서지고 무너진다. 도덕적 우월감은 타락의 지름길이다. p.117~118


약자에게 대화는 어려운 일이고, 강자에게는 귀찮은 일이다. 가해자가 대화를 먼저 요구할 때는 자기 필요에 의해서이고, 피해자가 대화를 청할 때는 "나한테 왜 그랬나요?"라고 묻기 위해서이다. p.125


1995년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위원회에 참가한 인권 단체들은 제네바 헌장이 강간을 '명예를 침해하는 범죄'로 규정하고 있음을 비판한 바 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성폭력을 인간에 대한 고통으로 인식하기보다는 남성 공동체의 명예 훼손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로 강간당한 여성은 자신이 속한 남성 공동체가 수치심과 굴욕감을 느끼지 않도록 피해를 숨기고 침묵해 왔다. p.160


우리는 흔히 '차이가 차별을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권력이 차이를 만든다. 차이가 먼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이 먼저 온다. 불평등이 있기 때문에 차이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권력이, 인간들 사이에 무엇이 의미 있는 차이인지 혹은 의미 없는 차이인지를 규정하는 것이다. 흑인 노예가 필요하기 전까지는 인간의 피부색이 문제되지 않았다. p.216~217


평화는 폭력 대신 대화, 말의 정치를 선택하는 것인데, 소통은 언제나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모든 대화는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변화를 위한 것이기에 역설적으로 '격렬한(폭력적인)' 것이다. 평화는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혼란과 모순을 '정리'(=변화의 중단)하지 않고 견디는 힘이며, 중단 없는 치혈한 저항을 뜻한다. p.224~225


사람들은 지배적 논리에 익숙해서 그 논리가 계속 틀리더라도 흔들리지 않지만, 새로운 시각에 대해서는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비판하고 조롱한다. 새로운 시도에는 언제나 시행착오와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생길 수 있다.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은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의 실수를 자신이 옳다는 증거로 삼는다. 논리는 힘의 법칙을 따르기 때문에, 자기 의견이 없고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지배 논리에 의존하고 열광하기까지 한다. p.231~232


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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