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긴 변명

아주 긴 변명 | 니시카와 미와 | 김난주 옮김 | 무소의 뿔 | 2017


깊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과, 이미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잃는 것과는 슬픔의 정도가 비교도 안 되겠지만, 후자가 빠질 실의의 늪 또한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p.61


감당하기 어려운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은 마치 강 건너 어딘가에 사는 사람들만 같았지, 자신이 그 강을 건너게 되리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p.73~74


지금은 아이들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죽는 게 두려워진다. 죽는 게 두려우면 사는 것도 두려워진다. 성실하게 살아갈 자신이 없어진다. p.101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전화해달라, 못된 짓을 하면 때려도 괜찮다, 라고 한다. 내가 그 아이들을 때리는 날이 온다면, 그때 나는 아마 정신을 앓고 있을 것이다. p.144~145


어른들은 다 그래. 한번 좋은 일이 있으면 그 행복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계속되지 않으면 불만을 느끼고. 행복은 불행의 씨앗이다. p.150


나는 사람의 부모가 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어떻게든 된다는 타인의 말은 믿을 수 없다. 어떻게든 되지 못한 놈들이 이렇게 우글거리는 세상에서 내가 '어떻게든 되는' 그룹에 들어갈 수 있다는 보장이 어디 있단 말인가? 어떻게든 되지 않았을 때, 어떻게든 된다고 했던 이들은 과연 뭘 해주나? p.151


9시를 알리는 인형이 튀어나와 오늘은 욕실을 청소해보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신페이가 집에 돌아와 할 일이 하나 줄어든다고 생각하니 스펀지로 쓱쓱 문지르는 손이 가볍다. p.161


"하지만 훗날 자신이 원해서 거머쥔 것들의 가치조차 희미해질 무렵에는 알게 돼."

"뭘요?"

"자신이 얕잡아 본 것들 가운데 실은 거대한 세계가 있었다는 걸."

"얕잡아 본 거요?"

"그래, 어차피 별거 아니겠지 하고 우습게 여긴 거.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려다 보이는 세계를 잃어버리는 거지. 세계의 진화 따위보다는 보이는 걸 제대로 보는 게 사실은 더 어려운 법인데." p.165


누군가에게 자신이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것, 또 자신이 '지켜주지 않으면 속수무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 얼마나 감미로운 일인가. p.204


"돌아와주었으면 좋겠어. 그뿐이야." p.237


"그래도 자신을 아끼는 사람을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되지. 깔보거나 비난해서는 안 되는 거야. 안 그러면 나처럼 돼. 나처럼 사랑할 사람이 하나도 없는 인생이 되는 거라고. 쉽게 헤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헤어지는 건 순간이야. 그렇지?" p.307


시간에는 한계가 있다는 걸, 사람은 후회하는 생물이라는 걸 충분히 알고 있었을 텐데,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건 어째서일까. p323


죽는다는 거, 남은 사람들에게는 누가 되는 일이야. 물리적으로도 그렇지만 사람의 마음에 누가 되지. p.324


'살고 있으니까, 살아라.'

그렇게 간단한 일일까 하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그런 건지도 모르지. 그 사람이 있으니 포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 사람'이 누구에게든 필요해. 살아가기 위해, 마음에 두고두고 생각할 수 있는 존재가. 그런 생각이 절실하게 드는군. 타자가 없는 곳에는 인생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인생은 타자라고.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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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 질환을 앓다'에서 '질환'이란 단어만 빠졌을 뿐인데, '정신을 앓는다'는 표현은 훨씬 담담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토트*

덕업일치를 꿈꾸며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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