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녀

문학소녀 | 김용언 | 반비 | 2017


(전혜린의) 일기와 편지는 '문학'의 엄정한 기준을 들이대어 낱낱이 살필 이유가 없는 사적인 기록물이다. p.80


전혜린을 '작가'라 부르기 저어된다면서 ('번역가'로서의 정체성을 지우고) '수필가'로만 부르는 것도, 혹은 '번역 말고는 창작을 하지 못했다'면서 문인 카테고리에 넣길 거부하는 것도 지식 수입의 최첨단에 서 있는 (현재에도 그렇고  1960년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번역 활동에 대한 심각하게 낮은 수준의 인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p.118


독서에의 몰두, 탐닉, 열렬한 환상은 오랜 세월 동안 여성의 전유물처럼, '사랑과 낭만'에만 매달리며 현실이 아닌 꿈만을 좇는 물정 모르는 '미성숙한' 여성의 태도인 것처럼 배제되어 왔다. 문학 고전을 읽으며 교양을 쌓는 소녀의 이상적인 모습이 점점 열광적인 도취 상태에 빠지는 철없는 '문학소녀'로 빠지는 순간이다. p.154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여류'의 뜻풀이는 "어떤 전문적인 일에 능숙한 여자를 이르는 말"이다. 즉 여류 문인/여류 작가라는 말은 글을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글 쓰는 일에 능숙한 여자라는 뜻이며, 일반적인 여성에게는 적용될 수 없지만 특수한 재능을 갖고 있는 여성에게는 허용된다는 배제와 차별의 원리가 작동하는 단어다. p.177


'여류'이기 때문에 "프레미엄"(위에 언급한 최정희의 표현을 빌자면 '값없는 칭찬')을 받는 게 아니냐고 여겼던 남성 지식인들과, '여류'라는 "핸드캪"으로 '너무 하찮게 여김'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여성 작가들 사이의 간극은 은근히 상존했다. p.186


스스로를 변호할 힘이 없기에 비난하기에 가장 손쉬운 대상인 문학소녀는 노동하지 않는 자, 피와 땀과 눈물을 모르는 자로 순식간에 변신한다. 4.19혁명 이후 이승만 전 대통령을 하야시키기까지 국민들이 분노하고 성토했던 이들의 정체는 분명했는데, 5.16 쿠데타를 일으키며 자신들이 '새로운 청년'임을 주장했던 군인의 대표자는 갑자기 문학소녀, 국내 작품도 아닌 '불란서 시집'을 읽으며 허황된 꿈에 잠긴 소녀야말로 '일하지 않는 자'라며 비난한다. 문학소녀는 "공공의 적"이자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는 적폐"로 급부상한 것이다. 1920~1930년대 신여성과 여학생들에게 쏟아졌던 온갖 비난, '책 읽는 여자'와 '글 쓰는 여자'가 나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식의 공격적 멸시와 분노는 그렇게 1960년대 '문학소녀'의 '좋지 못한 사상과 불건전한 관념적 불안'에 대한 훈계와 멸시로 이어지게 되었다. p.209~210

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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