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 벨 훅스 지음 | 이경아 옮김 | 문학동네 | 2017


페미니스트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여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덮어놓고 페미니즘 정치를 옹호하는 건 아니다. 정치적 입장이 으레 그렇듯이 페미니즘 신봉자도 선택과 행동으로 페미니즘 정치를 택한다. p.37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에 반대한다. 남성의 특권을 벗어던지고 페미니즘 정치를 기꺼이 포용한 남성은 투쟁의 소중한 동료이지 페미니즘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다. 반면 여성이라 해도 성차별주의적 사고와 행동에 젖은 채 페미니즘 운동에 잠입한 여성은 운동에 해를 입히는 위험한 존재다. p.45


임신중단권 문제야말로 기독교 근본주의에 도전장을 던졌기 때문에 대중매체의 관심을 끌었다. 여성은 아이를 낳기 위해 존재한다는 개념에 곧장 반기를 든 것이다. 지금껏 임신중단권만큼 여성의 몸이 국가적인 관심대상이 된 적도 없었다. p.77


우리는 백인 여성들이 백인우월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리하여 페미니즘 운동이 근본적으로 인종차별주의에 맞서지 않는다면, 백인 여성과 유색인종 여성 사이에 진정한 자매애가 피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p.142


'가부장제 폭력 patriarchal violence'이라는 용어는 흔히 쓰이는 표현인 '가정 폭력 domestic violence'과 달리 듣는 이에게 가정 내에서 자행되는 폭력이 성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적 사고, 남성중심주의와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가정 폭력이라는 용어는, 집밖에서 벌어지는 폭력보다는 사적이고, 어떤 점에서는 덜 위협적이고, 덜 야만적인,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지칭하는 '순화된'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집밖에서보다 집안에서 구타당하고 살해당하는 여성이 더 많으므로 가정 폭력의 실상은 결코 그렇지 않다. p.150


페미니즘 사상가들이 맞닥뜨리는 주요 난관 중 하나는, 가족 내 성차별주의의 주요 전파자가 대개 여성 양육자라는 사실이었다. 성인 남성 양육자가 없는 가정에서도 여성들은 자녀에게 성차별주의적 사고를 주입해 왔고 이는 지금도 그러하다. p.174


누구도 남성에게 육아 전담을 위해 직장을 관두라고 하지 않는 것만 봐도 이 사회에 성차별주의적인 성역할이 어느 정도 만연해 있는지 잘 보여준다.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이 여전히 여성이 남성보다 더 육아에 적합하다고 믿는다. p.193


어떤 여성이 자기 존재를 정당화하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자신이 아닌 다른 뭔가를 필요로 한다면, 그녀는 자기를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힘을 누군가에게 양도하는 셈이나 다름없다. p.219


동성애혐오를 영속화하면서 자신이 페미니스트라 주장하는 여성들은 백인우월주의적 사고를 고수하면서 자매애를 원하는 여성들만큼 착각에 빠져 있으며 위선적이다. p.222


여성이 자신의 몸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페미니즘의 기본 원칙이다. 여성 개인이 임신중단을 하느냐 마느냐는 순전히 선택의 문제다. 임신중단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반反페미니스트가 되는 게 아니다. 여성에게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야말로 페미니즘의 원칙이다. p.256


(권김현영) 예민하다는 것은 상처를 잘 받는다거나 약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예민한 사람들은 상황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예민함은 이상한 상황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예민하다는 건 주어진 질서의 오류와 모순을 눈치챌 정도로 지적이며 동시에 강인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p.272


요즘 번역하는 대본에 여성 혐오 + 장애인 혐오 표현이 많이 나와 괴로웁다...  
알파걸이 등장하는 현대극인데 어째서죠. 작가님, 그거 아니야. 


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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